여행 16일차 (18. 5. 17)
전 날에 예르미타주 미술관 신관을 구경하러 나갔는데 내가 방문했던 16일 부터 18일까지는 국제 포럼 때문에 신관을 닫는다 했다.
피카소, 고흐, 르누아르 같은 작가의 작품이 있는 신관을 크게 기대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구경을 못했다. 맥이 빠져서 숙소에 돌아와서 쉬다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도개교가 열리는 타이밍에 우버를 타고 나왔다.
근데 도개교가 1시 반 쯤에 열릴 줄 알고 예르미타주 건물 구경하고 오니 이미 올라가있더라. 어이가 없었다. 올라가는 모습 구경하려고 했었는데 타이밍이 정말 지독하게 안 맞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다리는 새벽 1시 정도가 되면 차량 통행이 금지되고 화물선의 물길이 열린다.
물론 이건 굉장히 불편한 일이겠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민들은 이런 전통을 자랑스러워한다는 얘기가 있다.
새벽 1시 즈음이면 밖에 돌아다니기 굉장히 위험한 시간 아닌가? 싶은데 맞는 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밤은 워낙 짧기도 하고 도개교가 열릴 때면 다리 주변에 사람들이 꽤나 많이 서있어서 그렇게 칙칙한 분위기는 아니다.
(물론 밤에 다니는건 항상 조심해야한다. 낮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밤에는 특히나 더 주의해야한다.)
도개교가 새벽 한시에 올라갔다가 두시 즈음에 차량 통행 때문에 잠깐 내려오고 새벽 세시 즈음에 이렇게 또 올라간다.
날씨는 꽤나 추웠지만 사진 찍는 재미가 있었다. 이 사진을 찍을 때 즈음이 새벽 세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는데 어느 새 동쪽 하늘에선 오늘의 해가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새벽 4시 까지 사진 촬영을 하다가 간신히 우버를 타고 숙소에 들어갔다. 다리가 열려있는 동안엔 차량 통행이 금지 되어있는데 자꾸 다리 건너편에 있는 차량들이 매칭이 돼서 몇번을 취소했다.
다음 날 아주 느지막히 일어나 피의 구원 사원에 가기로 했다. 이 날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마지막 날이었기에 좀 빠듯하게 움직이기로 했다.
피의 구원 사원의 피라는 유래는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2세가 이곳에서 폭탄 테러를 당해서 죽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테러범이 던진 폭탄은 빗나갔고 알렉산드르 2세는 오히려 다친 시민들을 걱정하며 보살피고 있을 때 두번째 폭탄이 날라왔다.
이 때 두번째 폭탄을 맞은 알렉산드르 2세는 더 이상 살 기미가 없었는데 죽어도 궁에서 죽고 싶다는 말에 결국에 궁궐에서 마지막 숨을 거뒀고 아들인 알렉산드르 3세가 후대 차르에 즉위한 이후에 아버지가 죽은 자리 위에 성당을 지은 것이다.
피의 구원 사원의 외관은 모스크바에 있는 성 바실리 성당을 따라 한듯한 이미지였지만 내부는 전혀 달랐다. 지금 까지 봤던 러시아 정교회 성당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고 웅장했다.
러시아 정교회의 성당들이 휘황찬란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좀 밋밋한 맛이 있었는데 피의 구원 사원은 정말 화려해서 눈이 즐거웠다. 내부의 장식들은 그림같지만 모자이크로 하나 하나 타일을 붙혀서 만들었다.
피의 구원 사원은 수요일에는 개장하지 않고, 입장료는 성인 250루블, 학생 150루블이다.
국제학생증 덕분에 100루블을 아낄 수 있었다. 유럽 여행을 다닌다면 isic 국제학생증은 참 도움이 많이 된다.
사람들을 안 보이게 사진을 찍어서 그렇지 내부에는 이렇게 사람들이 가득 차있다. 사실상 눈높이에서 사진을 찍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 곳이다.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단체 관광객들에게도 필수 코스처럼 여겨지는 곳인듯 하다.
가까이서 보면 더 대단함이 느껴지는 모자이크였다. 저 조그만한 타일을 하나 하나씩 붙혀서 성당 내부를 채운다. 사실 중세 시대의 성당의 공사기간을 보면 기본으로 100년을 넘어가는 곳들이 꽤나 많다.
피의 구원 사원과 성 이삭 성당은 둘 다 오후 6시까지 관광객들에게 열리는데, 이 날은 성 이삭 성당도 볼 생각이여서 급하게 움직였다.
사진은 이 날 찍은건 아니지만 성 이삭 성당은 성당의 규모도 굉장히 큰 편이고 금색 돔도 굉장히 유명하다. 돔 위의 전망대는 성당과는 별개로 입장료를 내야하고 오후 6시 이후에는 추가 요금을 내야한다.
오후 6시 이전에는 성당 입장료와 전망대 입장료 각각 250루블 (학생 150루블)이고, 오후 6시 이후엔 전망대 입장료가 400루블이다.
사실 오후 6시 이후에도 성당으로 들어올 순 있는데 그 시간대에는 예배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픈 되는 시간이라 무료로 입장하는 대신 사진 촬영 같은건 절대 안되고 조용히 구경을 해야한다.
성 이삭 성당은 유럽의 성당 중에서도 굉장히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그리고 다른 성당들 보단 비교적 지어진지 얼마 안된 성당이다.
지금 성당의 위치는 표트르 대제의 동상 뒤에 있는 공원에 접해있는데 처음에는 다리를 건너야 있는 바실리예프스키 섬에 있었는데 위치를 옮기기도 하고 목조 구조로 지었다가 바다 주변에 있던 턱에 재건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의 성 이삭 성당은 현상경기가 열려서 설계된 것이고 프랑스의 유명하지 않았던 건축가 오귀스트 드 몽페랑이 당선되어서 설계 진행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습지 위에 만들어진 도시라 지반이 굉장히 무른 편에 속하는데 성 이삭 성당도 이런 지반 때문에 기초를 다지는 대만 꽤나 많은 시간을 쏟았다고 한다.
오귀스트 드 몽페랑은 생애 대부분을 성 이삭 성당을 만드는데 보냈고 자신이 죽은 이후에 이곳에 묻히길 바랬으나 러시아 정교회가 아니란 이유로 묻히지 못하고 프랑스 고향 땅에서 안식을 취하게 된다.
성 이삭 성당은 규모도 있고 내부 장식도 화려한 편이긴 한데 내 기준으로 감동을 주는 성당은 아니었다. 오히려 피의 구원 사원에서의 드라마틱한 내부를 보고 와서 그런지 느낌이 반감되기도 했다.
현대 건축을 답사할 때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런 고전 건축을 답사할 때는 경이롭단 생각이 든다.
이 날은 마린스키 극장에서 백조의 호수 공연을 보기로 했고 횡단열차에서 만난 정현이도 이 날 공연 예매를 했다해서 오랜만에 만나서 같이 가기로 했다.
다만 우버가 정말 안 잡혀서 공연 시작 시간인 7시보다 3분 전에 간신히 극장에 도착을 했다. 7시보다 늦게 가는건 아닌지 초조해하면서 계속 시계만 보면서 갔다.
발레 공연을 하는 마린스키 극장. 극장 건물이 여러 개가 있어 공연 성격에 따라 공연하는 곳이 달라진다. 이곳은 발레 공연을 하는 곳으로 가장 원조격인 건물이다.
사진에 보이는 시야보다 좀 더 뒤에서 관람을 했고 (뒤에서 관람하기도 하고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뒷통수가 시야를 방해한다.) 7200루블로 한국돈으로 대략 13만원 정도다.
옆에 테라스 부분. 이런 클래식한 극장에 와보는게 내부 구조가 신기했다. 약간 옛날 영화에서 보는 듯한 느낌 그대로랄까.
가장 비싼 금액 대에 속하는
정현이는 내 위치보다 위쪽에서 공연 관람을 했는데 저기도 10만원이 넘어가는 자리였다. 사진을 올리고 싶지만 매너상 얼굴 안 나온거로 골랐다.
난 옷이 짐이 되기도 해서 좀 차려입는 옷을 살 생각이 없었는데 정현이는 발레 공연 보러 오는 김에 자라에서 옷을 구매했다. 내 주변에도 남자는 턱시도, 여자는 드레스 의상을 입고 옷 커플들이 더럿 있었다.
백조의 호수 공연에 대한 내용은 따로 포스팅을 하기로 했는데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다. 백조의 호수 음악을 들을 때면 이 때의 기억이 계속 생각날 듯 하다.
공연이 끝나고 정현이 숙소 주변에 있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는데 11시에 가까운 시간 대라 하나는 빠꾸 먹고 idiot restaurant 라는 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당 이름을 왜 idiot으로 지은진 모르겠다만.
그럭저럭 맛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선 5박을 했는데 정말 쉬엄쉬엄 다녔다. 일단 일어난다 하면 기본 정오는 넘기고 일어났으니..
내일은 발트 3국의 시작. 탈린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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