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여행 다니면서 비가 온적은 없었는데 이 날은 새벽에 비가 살짝 오다가 그쳤고 날씨도 꽤나 우중충했다.
마드리드 시내를 이곳 저곳 다니게 될 것 같아서 메트로에서 1일권을 구매했다. 마드리드 지하철(메트로) 1일권의 금액은 8.4유로였다.
가장 먼저 온 곳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이었다. 마드리드 메트로 1호선 Atocha역으로 오면 된다. 미술관 입구쪽으로 걸어가니 광장에서 견학 온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은 피카소가 그린 게르니카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미술관의 신관을 프랑스의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했다고 한다.
나는 건축학과 국제학생증이 있어서 무료로 입장 할 수 있었다.
입장료의 부담도 없었고 게르니카만 구경하려고 갔는데 정말 충격을 받았다. 게르니카가 있다는 전시실 앞에서 살짝 꺾자 게르니카가 반 정도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순간부터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렸을 땐 애들이 그림을 이상하게 그리면 피카소 따라하는거냐고 놀렸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피카소의 그림은 정말 대단하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주변에는 Caixa Forum이 있는데 카이샤 은행에서 운영하는 갤러리다. 마드리드에 있는 이 건물은 헤르조그 드 뫼롱이 설계한 건축물인데 주변의 벽돌 색과 비슷한 코르텐과 그에 대조적으로 옆에는 식물들이 자라난 벽이 있는데 이건 프랑스의 식물학자 패트릭 블랑이 디자인 했다.
Caixa Forum 내부에서는 현대 미술에 대한 전시를 하는데 난 입장하진 않았다. 건축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왔는데 여기 또한 견학 온 어린 아이들이 많이 몰려있었다.
포럼 내부로 들어가는 저층부 부분의 천장이 평평하게 되어있는게 아니라 보이는 것 처럼 각지게 되어있었다. 어쩌면 여기서 부터 현대미술이라는 전시 컨셉에 맞는 건축물을 생각했던건지 모른다.
코르텐 스틸은 시간이 지날 수록 색이 더 진하게 바뀌는데 유지 보수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재료다. 위에 보이는 구멍이 뚫린 곳은 물리적인 힘으로 뚫은게 아니라 더 심하게 녹이 슬게 하여 구멍이 나게했고 그 사이를 통해 바깥 풍경을 볼 수 있게 했다.
프라도 미술관에 왔는데 역시 건축학과 국제학생증을 가지고 있어서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오르세 미술관이나 게르니카를 감명 깊게 봤던거에 비해 프라도 미술관은 재미가 없었다.
그나마 볼만 했던건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봤다는 것이고, - 시녀들은 생각보다 작품이 엄청 커서 놀랐다. - 프란시스코 고야의 옷을 입은 마하, 옷을 벗은 마하를 본 것이다. 벨라스케스와 고야의 작품들을 빼곤 내 취향은 아니었다.
프라도 미술관을 구경하고 나선 산 미구엘 시장에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마드리드의 솔 광장까지 왔는데 사람들이 굉장히 많고 무슨 이벤트를 하는지 인형탈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산 미구엘 시장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흔히 좌판을 깔고 있는 시장인 줄 알았는데 하나의 건물이여서 여기에 제대로 찾아온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거리에서 봤던 사람들보다 산 미구엘 시장 안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게 느껴질 정도로 시장 안은 굉장히 붐볐다. 일단 파는 종류도 다양했는데 술만 파는 곳, 튀김만 파는 곳, 빠에야만 파는 곳 처럼 가게의 종류도 다양했다.
시장 안은 붐비고 무엇을 사먹기도 애매해서 일단 앞에 있는 마요르 광장에 가보기로 했다. 산 미구엘 시장에서 걸어간다면 이 문을 지나야 만날 수 있다.
문을 들어가면 이렇게 넓게 펼쳐진 광장이 떡하니 나온다. 저 좁은 문에서 이렇게 넓은 곳이 나온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광장의 느낌을 극대화 하기 위해 들어가는 길을 다 좁게 만들어 놓은 듯 하다.
마요르 광장의 중심에는 스페인의 국왕이었던 말을 타고 있는 펠리페 3세의 동상이 있다. 광장은 매우 활기찬 분위기였다. 대학생 같아 보이는 친구들도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고, 관광객들도 많았다. 유럽 여행 하면서 가장 부러웠던건 이런 광장이 활성화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나도 광장에서 햇볕을 쐬며 기분 좋게 쉬고 있는데 역시나 집시가 사인을 해달라고 나한테 달라붙었다. 무슨 말을 계속하는데 내가 계속 No, No만 반복하자 Ah, STUPID! 하면서 갔다. 소매치기 하려는 것도 잘 안 풀리나보다.
뭐라도 먹을 겸 다시 산 미구엘 시장에 왔다.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이라 가격이 좀 비싼편인데 빠에야 1인분 먹는데 11.6유로를 냈고 사진에 보이는 샹그리아 한 잔 먹는데 3유로를 냈다. 비싼 감은 있지만 그래도 맛은 좋았다. 시장 전체가 시끌벅적 하고 내가 나서서 주문을 하려고 하지 않으면 주문을 잘 안받는다.
마드리드 메트로 10호선의 Begona역에 가면 콰트로 토레스 비즈니스 지구를 갈 수 있다. 진짜 특별한건 없고 마드리드에 있는 오피스 빌딩이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보는 것과 달리 오피스 자체를 굉장히 매끈하게 디자인했다.
이 중 하나를 I.M. 페이가 설계했다고 한다. 애초에 비즈니스 빌딩이기도 하고 호텔이 있는 곳이라 내가 들어갈만한 건덕지가 없었다. 네 개의 큰 빌딩이 서있어서 콰트로 토레스 비즈니스 지구였는데, 조만한 한 개의 오피스 빌딩이 더 들어온다고 한다.
메트로 10호선을 타고 다시 마드리드 시가지로 들어오려고 하는데 오는 길에 레알 마드리드의 홈 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역이 있어서 잠시 들려봤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도 경기장 자체 투어가 있는거로 아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들어가보진 못했다.
마드리드는 크게 재미가 없었다. 도시의 분위기가 너무 현대적이여서 세비야나 그라나다에서 느꼈던 감정하고는 완전 반대였다.
원래는 내일 밤에 야간 버스를 타고 바르셀로나로 넘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드리드가 너무 재미가 없어서 시간 손해 보는걸 감수하고 내일 아침 8시에 바로 바르셀로나로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같은 방에 굉장히 쾌활한 외국인 친구가 밤에 나가서 놀자고 했지만 딱히 끌리지가 않아서 빨래도 하고 쉬면서 하루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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