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니의 여행이야기 :: 의도치 않았던 인도 뉴델리에서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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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를 타지 못하고 델리에서 하룻밤을 더 묵게 되었다. 바로 바라나시로 가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빠하르간즈 구경도 하고 퍽 괜찮게 하루를 보낸 것 같다. 숙소의 체크아웃은 11시 까지였고 느지막히 일어나서 인도의 TV에서는 어떤 방송을 하나 돌려봤다. 힌디어야 하나도 알아 들을 수 없었고 스포츠 채널이나 보자 했더니 크리켓 전용 채널도 있다. 여담이지만 크리켓은 인도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국민스포츠 중에 하나이다. 아무래도 영국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겠지. 

 저녁 7시에 뉴델리역에서 바라나시로 출발하는 기차를 탈 때 까지 시간이 꽤 남았다. 오늘은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내야할까. 딱히 생각하고 있던건 없었다. 

 어제 인도 음식점에 가서 밥을 다 남기고 와서 그런가 어젯밤 잠을 청하는데 자꾸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일어나자마자 생각한건 오늘도 한식당에 가서 밥을 먹어야겠다는 것이었다. 배낭을 챙기고 숙소를 나왔고 내 발걸음은 바로 더 카페로 향했다. 아마 한동안 인도 음식은 입에 대지도 못할 것 같다. 



 라면이 먹고 싶었다. 한국에서 컵라면 진짬뽕을 챙겨오긴 했는데 끓인 물을 구할 수가 없었다. 진짬뽕은 내 배낭 가장 밑에 박혀있고 숙소에다가 끓인 물을 달라고 하기엔 왠지 모르게 소심해져서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오늘 점심으로 더 카페에서 신라면을 하나 주문했다. 어제 오삼불고기를 먹으면서 정말 맛있게 먹었는데 신라면은 더 맛있었다. 라면 국물이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 때 생각을 하니까 입안에 침이 고인다.


 라면을 다 먹고 결제를 하면서 사장님께 가게에 배낭을 맡기고 나갔다 와도 되겠냐고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허락 해주셨다. 기차 출발까지 남은 시간동안 델리에서 무엇을 하면서 보내야하나 고민하다가 사장님께 델리에서 가볼만한 곳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악샤르담 사원에 가보는건 어떻겠냐고 하셨다.  딱히 계획이 없었던 나는 사장님의 말만 듣고 악샤르담에 가기로 결정했다. 


 어제 빠하르간즈를 돌아다니면서 메트로역 위치를 미리 알아뒀다. 빠하르간즈에서 뉴델리역 방향이 아닌 반대방향으로 쭉 걸어가다가 빨간색 M 마크를 보고 저기 즈음이 메트로역이겠거니 생각했었다. 



메트로역 안에 들어오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애초에 토큰을 사는 줄 부터 사람들이 많았고 어째서인지 동양인은 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인도인들의 피부는 나보다 까맣고 눈은 엄청나게 큰데 동양인인 내가 신기한지 가끔씩 빤히 쳐다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커다란 눈이 계속 신경 쓰였다. 



"PAPA, I AM MORE THAN THREE FEET PLEASE BUY MY TOKEN" "아빠, 나는 3피트(90cm 정도)보다 크니까 내 토큰을 사주세요."

토큰 창구 앞에 붙어있는 저 문구가 참 웃겼다. 우리 나라에서는 나이로 요금을 따지는데 인도에서는 키로 따진다. 


 토큰 창구 앞에 메트로 노선도가 있었다. 거기선 현재 위치부터 목적지까지 요금을 볼 수 있었는데, 내가 있는 Ramkrishna Ashram Marg 역에서 악샤르담이 있는 Akshardham 역까지는 15루피였다. 앞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빠지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창구에는 인도인 여자 직원이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악샤르담!" 하면서 10루피 동전 2개를 그녀에게 줬더니 토큰 하나를 준다. 근데 거스름돈을 안 준다. 사실 5루피면 한국돈으로 80원 정도 하는 돈인데 내가 외국인이라 모를거라 생각하고 5루피를 일부러 안 거슬러주고 모른척 하는게 괘씸했다. 


 "Akshardham!! fifteen rupees!!" 하면서 조금 화난듯한 말투로 한번 더 얘기를 하니까 그제서야 5루피 동전을 틱 하고 나에게 밀어준다. 진작에 줄 것이지.


인도의 메트로는 들어가는데 보안검사를 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메트로에 정말 꽉 찬다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들어갔다. 이 때 이후로도 메트로를 몇 번 더 탔지만 매번 퇴근시간 2호선을 타는 느낌이었다. 



 메트로를 타고 가다가 밖을 보니 하늘이 아예 노란색이었다. 인도의 미세먼지는 심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막상 이렇게 노란 하늘을 보니까 더 실감이 났다. 우리나라에서 미세먼지 때문에 공기가 안 좋다고는 하지만 인도의 미세먼지하고는 비교 자체가 안된다. 그런데도 인도인들은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물론 나도 그랬고. 



 악샤르담역에 내려서 제대로 된 도로를 처음 봤다. 여행을 되돌아보니 뉴델리를 묘사할 수 있는 것들은 엄청나게 심한 미세먼지들과 엄청나게 시끄러운 경적소리들이었다. 정말 인도에서 차를 몰거나 오토바이를 끄는 사람들에겐 경적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앞에서 천천히 가도 경적, 추월하려고 해도 경적, 사실 별 거 아닌거 같은데도 계속 경적을 울리면서 다녔다. 



 악샤르담역에서 악샤르담 입구 까지는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그런데도 릭샤꾼들은 릭샤를 타고 가지 않겠냐고 말을 걸었다. 인도에 여행하게 되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 중에 하나가 "릭샤?? 릭샤?? 툽툽!!" 이다.


 악샤르담은 저녁에 하는 분수쇼가 유명하다. 나 같은 경우는 저녁에 기차를 타고 가야했기에 분수쇼는 구경하지 못했고 사원만 구경했는데 그래도 구경할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악샤르담은 반입이 제한 되는 물품이 굉장히 많다. 핸드폰, 카메라, USB, 모든 전자기기, 가방, 핸드백, 우산, 그리고 물을 제외한 음식물까지 아무것도 반입이 안된다. 그래서 악샤르담에 갈꺼면 아무것도 들지 않고 지갑 하나만 들고 가는게 가장 좋다. 그래야 보안검색을 받지 않고 빨리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같은 경우는 가방에 필름카메라도 있었고 핸드폰도 들고 갔었는데 보안검색을 하면서 물 한병과 지갑을 제외하고 모든 짐을 맡기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한시 조금 넘은 시간에 악샤르담역에 도착했는데 사원을 다 보고 다시 돌아오니 두 시간 가량이 흘러있었다. 아직까지 기차시간 까지는 3시간 정도가 남았고 나는 다시 어딜 가볼지 고민하다가 연꽃 사원(Lotus Temple)이라는 곳에 가보기로 했다. 연꽃 사원은 말 그대로 연꽃 모양의 사원인데 사진으로 보는 사원의 모습이 꽤나 신기하고 내부 공간은 어떻게 되어 있을지 궁금했다. 


 악샤르담에서 연꽃 사원이 있는 Kalkaji Mandir 까지는 21루피가 들었다. 내 지갑에 있는 동전으로 21루피를 맞출 수 있었고 이번에는 정확히 21루피를 역무원에게 건냈다.



 Kalkaji Mandir 역에 내리니 많은 사람들이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왠지 이들이 가는 목적지는 나와 같을 것 같아서 눈치껏 그들을 따라갔다. 멀리 연꽃 모양의 건물이 보였고 나는 혼자 걷기에는 왠지 무서워서 단체로 온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 뒤에 붙어서 같이 걸어가곤 했다. 연꽃 사원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데 그 대신에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 사진을 찍은 곳에서 줄이 시작하는건 아니고 입구 즈음 가면 그 때 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는데 줄 섰을 때 부터 거의 30분인가 40분을 기다려서 입장한 것 같다. 꽤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 들어갔더니 휘황찬란한 외부와 다르게 내부는 정말 별거 없었다. 외부를 연꽃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체만 보일 뿐 볼만한 것이 없었다. 


 나는 무교지만 여행을 하면서 성당이나 사원에 들릴 일이 있으면 항상 하는 기도가 있다.

"여행 다니는 동안 날씨가 좋게 해주세요. 항상 건강히 다닐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세요." 라고 빈다. 이번에도 연꽃사원에서 그 기도를 한번 하고 배낭을 찾으러 다시 더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배낭을 찾으러 오면서 계속 걱정을 했다. 악샤르담과 연꽃사원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생각보다 내가 많은 시간을 소비했고 어쩌면 기차를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낭을 찾으면서 사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배낭을 멘 상태로 뉴델리역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뉴델리역에 도착했지만 안심을 할 순 없었다. 내가 타야 될 기차의 플랫폼을 전광판에서 찾아야하는데 마음이 급해서인지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마음을 좀 추스리고 플랫폼을 찾으니 기차는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 



 티켓을 보며 내가 타야 될 열차 칸과 자리를 확인하며 내 자리에 갔다. 그런데 인도에 기차에 처음 타서 그런지 내 번호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입구에서부터 천천히 번호를 세면서 갔는데 왜 내 번호가 안 보일까. 결국 자리에 앉아있는 인도인에게 내 티켓을 보여주며 '내 자리가 어딘지 모르겠어' 라고 보여주니 번호를 확인해준다. 그러더니 자기가 앉아있는 자리가 내 자리라는 것이다. 너무 능청스럽게 얘기해서 어이가 없었다. 분명 그 자리에는 벌써 4명이나 앉아 있었는데. 그 모습만 봐선 내 자리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여긴 인도구나. 그들은 내가 오자 자리를 넓혀줬고 난 배낭을 윗 침대에 올려두고 그들 사이에 끼어 앉았다.    



 내가 탄 차는 SL 클래스다. 인도의 기차는 Second Sitting, 즉 앉아서 가는 자리. 그리고 그 다음인 SL, Sleeper 라고 해서 누워서 갈 수 있는 자리다. 슬리퍼 좌석은 한 구역에 6개의 자리가 있는데 평소에는 가운데 있는 침대를 접어서 가장 아래에 있는 침대를 의자처럼 사용하고 잘 때는 다시 가운데 침대를 펴서 자는 방식이다. 그리고 3AC와 2AC가 있는데 3AC 같은 경우는 자리 구성은 SL과 같은데 에어컨이 있는 열차고 객차를 청소하는 직원들도 있고 서비스도 달라진다. 대신 SL에 비해 가격은 3배가 더 나온다. 



 어제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를 놓쳐서 외국인 창구에 가서 티켓을 끊으니 외국인 쿼터로 내 좌석이 배정된 것 같았다. 내가 탄 구역에는 나까지 6명의 외국인이 있었는데 가장 안쪽에 있는 친구는 처음에 일본인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중국인이었다. 그리고 영어를 매우 잘했는데 중국에서 영어 선생님을 하다가 지금은 전문적으로 포커 플레이어를 한다고 했다. 오른쪽에 있는 두 분은 체코에서 오신 할아버지들. 사실 저 할아버지 두 분은 어제 외국인 창구에서 봤던 기억이 있었고, '어제 외국인 창구에 있던걸 봤어요!' 라고 아는척 했다. 내 뒤에 있는 형님과 그 건너편에 있던 형님은 우크라이나에서 온 분들이었다. 


 여행의 가장 큰 재미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데서 오는 것이지 않겠나. 자기 전까지 정말 많은 얘기를 했다. 다들 자기들이 다녔던 여행지에 대해서 얘기도 하고 사진도 보여주기도 했다. 저기서는 내가 가장 어린편이었는데 내 나이를 알려주면서 한국에는 한국만의 나이를 세는 방식이 있다는 것도 알려줬다. 우리나라는 태어나면 그 때부터 한 살이고 해가 넘어가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알려주면서 만약에 12월 31일에 태어나면 그 때 한살이고 하루가 지나서 1월 1일이 되면 2살이 된다니까 그게 말이 되냐며 다들 어이 없어 했다.


 내가 여행을 갔던 2017년 2월 즈음의 한국은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서 광화문에서 촛불 시위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이 때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해 얘기하면서 박근혜와 박정희 전 대통령, 그리고 최태민과 최순실의 얽히고 설킨 관계에 대해 설명해주느냐고 진땀을 뺐다. 우크라이나 형님은 이 얘기를 듣고 우리나라에서도 2014년에 혁명을 했다고 그 때 키예프의 사진을 보여줬다. 나는 우크라이나에서 혁명이 있었던 사실을 몰랐다가 이 때 처음 들었는데 진짜인가? 하면서 나중에 찾아봤더니 그 당시의 혁명 때 75명이 사망하고 1100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이렇게 얘기하고 가면서 내가 Selfie를 다 같이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보자 다들 밝은 표정으로 포즈를 취해줬고 그 다음에는 자기들도 한 장씩 찍어야겠다고 난리를 쳤다. 



 슬슬 자자는 얘기가 나오면서 우리도 침대를 펴고 각자 자리에 누웠다. 자기 전에 우크라이나 형님들은 그들이 가지고 온 보드카를 한 모금씩 마시고 잘 생각인듯 했다. 나보고 너도 한 모금 마셔보지 않겠냐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한 모금 마셨는데 도수가 너무 쌔서 나도 모르게 얼굴을 팍 찡그렸더니 내 모습을 보고 있던 우크라이나 형님들과 체코 할아버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웃었다. 

  난 Upper Seat라 가장 윗 칸에서 잤는데 누가 배낭을 가져갈까봐 불안해서 내 자리에 배낭도 올려놓고 누우려고 하니 발을 제대로 뻗을 수 없었다.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젠 정말 잘 시간이다. 인도의 기차를 탔을 때 자면서 신발을 밑에 두면 누가 신발을 훔쳐갈 수도 있으니 선풍기 위에 올려두라는 글이 생각이 났다.

신발을 선풍기 위에 올려두고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 속에서 나는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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