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서 여행을 다니면 아버지는 항상 필름카메라를 들고 다니셨다. 아마 동생이 태어나면서 필름카메라를 구매하셨는데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고 나서도 그 카메라를 계속 쓰셨다. 가끔씩 아버지는 초점을 맞춰주시고는 나에게 이 버튼을 누르면 된다고 가르쳐주셨고, 그렇게 내가 사진을 찍어봤던 경험이 꽤나 있었다. 아마 2002년 즈음이었나 아버지는 일본 출장을 다녀오시면서 소니의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으로 구입하셨고 그 뒤로 필름카메라는 가방 속에서 렌즈와 함께 내 방 옷장 어딘가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묵혀있던 필름카메라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내가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가방 속에서 나와 빛을 보게 되었다. 그 때는 필름사진을 찍는게 막연히 좋았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다닌다고 생각을 했던 것일까. 진로를 한창 고민하고 있을 고등학교 2학년 때 나는 아버지에게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고, 사진 공부를 전문적으로 하고 싶다고 했었지만 아버지는 사진은 취미로 즐기는게 좋고 너가 직업으로 가지는건 힘들지 않겠냐고 나를 설득하셨다. 나는 결국 그 꿈은 잠시 접어두고 취미로만 사진을 대하게 되었다.
사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용돈도 많이 못 받던 때에 필름사진을 취미로 가지는건 금전적인 타격이 꽤 컸다. 그리고 그 시절에 나는 필름 스캔이란걸 몰랐던 때라 필름 한 롤을 찍으면 그대로 인화까지 하니 한 통을 찍으면 2만원 정도의 돈이 들었다. 그래서 고등학생 시절에 찍었지만 현상은 하지 않은 필름들이 내 방에 꽤나 있었다.
이 사진을 찍은건 아마 그렇게 사진에 빠져있던 그 때 즈음으로 생각된다. 2009년에 찍었지만 이 사진을 발견한건 현상을 했던 2016년이 되어서였다.
처음에 필름스캔 된 사진들을 보다가 이 사진을 봤을 때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마냥 띵해졌다. 이런 사진을 정말 내가 찍은걸까?
그렇게 카메라를 가방 속에 오랜 시간 동안 남겨뒀는데 내 마음을 울리는 이 사진 한장은 나한테 오기 위해서 7년의 시간을 어떻게 기다렸을까.
당신의 미소, 2009.
'Winnie Galle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정에서의 해돋이 (0) | 2018.02.05 |
---|---|
신흥시장, 해방촌 (0) | 2018.01.23 |
프라하의 연인 (2) | 2018.01.11 |
여수 돌산대교의 밤 (0) | 2018.01.10 |
인도여행, 그리고 니콘 FM2 (4) | 2018.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