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니의 여행이야기 :: 인도 아그라, 그 곳의 사람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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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그라 포트를 구경하고 무작정 아그라 칸트역으로 왔다. 아그라에서는 1박을 하지 않았고 이 날 역시 야간 기차를 타고 우다이푸르로 이동하는 기차가 예정되어 있었다. 인도여행간에 기차 예매를 하려면 IRCTC 가입 후에 인증을 받고 Cleartrip으로 예약을 하는 아주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하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인도 기차를 예약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나는 아그라에서 우다이푸르로 가는 기차는 클리어트립으로 예약을 했다. 인도 여행 출발하기 전에는 인증이 안돼서 무작정 와서 역사에 있는 외국인 창구에서 예약을 했는데 이번건 핸드폰으로 했다.  



 아그라 칸트(Agra Cantt)역에 오니 시간이 오후 3시 즈음 되었다. 일단 저녁 기차 시간 까지는 3시간이 넘게 남았는데 딱히 하고 싶은게 없었다. 그래서 아그라 칸트역에 짐을 맡기고 난 후에 이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그라 칸트 역에서 짐을 보관하려면 10루피(약 170원)를 내야한다. 3시간을 뭐하면서 보낼까 했는데 아그라 포트까지만 해도 잘 터지던 데이터가 아그라 칸트역 주변에 오자 먹통이 되었다. 스마트폰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건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이었다.  


 아까 아그라 칸트역 앞에까지 잠깐 나가보니 릭샤들이 몰려있고 차도 옆으로 노점상들이나 다양한 상점들이 몰려 있었다. 그래서 무작정 거기에 가보기로 했다. 



 나는 이렇게 두 갈래로 나뉘는 길이 이뻐서 필름 카메라를 들었는데 나중에 현상을 하고 보니까 저 가운데에 아저씨가 멋지게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가 어색하지 않게 포즈를 취해줘서 더 좋은 사진이 남게 되었다.  



 노점상이 있는 곳 주변으로 가보니 이렇게 땅콩을 파는 왈라가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좀 돌아다녔더니 배가 고프기도 한데 길거리에서 파는 인도식은 괜히 먹었다가 탈날까봐 먹질 못했다. 그래서 그에게 가서 땅콩을 사기로 했다. 



땅콩은 100g에 20루피였다. 양이 얼마나 되는지 감이 잘 안와서 200g은 너무 많은 것 같고 100g만 달라고 했다. 종이 봉투에 땅콩을 담아줬는데 그 방식이 참 오랜만에 보는 거였다. 한쪽에는 100g짜리 추를 달고 한 쪽에는 땅콩을 올려놓고 저울의 균형을 맞추고 나서 땅콩을 담아줬다. 



 날은 다소 더웠던 날이고 뜨거웠던 땅콩이지만 남는 시간 동안 이 아저씨에게 산 땅콩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주변에는 온통 인도인들이었다. 그 흔한 외국인들도 이 주변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인도인들 사이에 유일하게 나 혼자만이 동양인이었다. 그렇게 있으면 무섭지 않냐고 궁금해 할 수 있겠지만 딱히 위협을 느낄 만한 장소도 아니었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아서 괜한 걱정은 들지 않았다. - 그렇다고 인도가 치안으로부터 안전한 나라는 절대 아니다. -  



 나는 사람 구경 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여행을 다니면서 좋은 명소를 가보고 기뻐할 때도 있지만 여기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가만히 구경하면서 그들의 삶을 관찰한다. 내가 앉아서 땅콩을 까먹던 곳은 바로 옆에 있는 여행사의 정류장이었다. 옆에 앉아있던 이 아저씨들과 얘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동양인인 내가 혼자 앉아있으니까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들은 아그라에 있는 공항까지 가는 밴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굉장히 궁금해했다. 



여기는 상점이 많고 바로 앞에 도로가 있어서 그런지 릭샤들도 많고 오토바이들도 많이 지나다녔다. 한 청년이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데 그 뒤에는 좀 어린 친구도 같이 타 있었는데 바로 그 어린 친구가 사진에 나온 애다. 나와는 얘기 하지 않았지만 내가 신기한지 나를 슬쩍 슬쩍 쳐다보길래 사진 찍을래? 라고 물어보니까 저렇게 포즈를 취했다. 정말 인도란 나라는 인물사진을 찍는데 필요한 자신감을 얻기에 좋은 곳이었다. 



 날도 덥고 땅콩도 먹고 있으니 목도 마르기 시작하는데 옆에서 인도인들이 아주 시원하게 스프라이트를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보니 더 마시고 싶었다. 나도 사먹어볼까 해서 상점에 가서 스프라이트를 사기 위해 빠야~ 빠야~ 하고 아저씨를 불렀는데 주변이 워낙 시끄러워서 그런지 나를 보지 않았다. 그런데 옆에 있던 인도인이 갑자기 아저씨를 크게 부르더니 나한테는 뭐 먹으러 왔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난 스프라이트를 마시려고 한다니까 그가 스프라이트를 대신 시켜주고 나에게 건넸다. 물론 계산은 내가 했지만! 주문이라도 대신 해준게 참 고마웠다.


 난 한국친구들이나 인도친구들에게 서로의 물가차이를 얘기해주면서 스프라이트의 가격을 쓰곤 했는데 이 600ml의 스프라이트가 35루피였다. 한국 돈으로 600원이 안하는 돈이다. 거의 1/3 가격인데 한국과 인도의 물가 차이가 그정도 차이나곤 했다. 



 아까 그 아저씨들 두명을 보내고 나서 가만히 앉아서 또 사람구경을 하고 있는데 내 옆에 할아버지 한 명이 앉으시더니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셨다. 여기서 이때의 소식을 하나 얘기하자면 내가 여행을 갔던 2017년 2월은 아그라와 바라나시가 속해있는 우타르 프라데시 주의 선거기간이었고 내가 아그라를 갔던 날이 주의 선거날이었다. 그래서인지 인도 유심을 끼고 있는 내 핸드폰에 계속 우타르 프라데시를 위해 투표하라는 문자가 계속 왔던거였다. 할아버지는 오늘 투표를 하고 왔다고 하면서 나한테 검지손가락을 보여줬다. 저렇게 까맣게 칠해져 있는게 투표를 했다는 증거라 했다. 인도의 투표 같은 경우는 할 때 신원 확인이 제대로 안돼서 이렇게 검지손가락에 검정색으로 칠하는거로 이중투표를 방지한다고 한다.   



 이 할아버지 역시 내가 한국인이란거에 굉장한 관심을 보이셨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이랑 대화를 하는건 흔치 않은 일이고, 역시 인도에서도 인도인이 한국인과 얘기할만한 상황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할아버지랑 얘기할 땐 대부분 할아버지가 얘기하셨는데 사실 절반 정도는 이해하지 못할 얘기를 하셨지만 열심히 듣고만 있었다.  



 원래는 저녁 6시 반 즈음에 열차 출발이 예정되어있어서 역 앞에 있는 상점 거리에 있다가 아그라 칸트역으로 다시 돌아왔다. 역시 2월 달이라 그런지 저녁 여섯 시도 안됐지만 해는 거의 다 저물어가고 있었다.   



 앞에서 아그라 칸트역의 짐 보관하는 비용이 10루피라고 헀는데 사실은 16루피다. 내가 이 때 동전이 20루피로 안 떨어지고 10루피 동전 한 개만 들고 있어서 지폐를 내려고 하니까 일하는 직원이 그냥 10루피만 내라고 하고 보내줬다.



 인도 여행을 하면서 정말 좋았던건 어느 날이든 석양이 너무 아름다웠다. 이 날은 기차역에서 해가 저물어가는 걸 구경했는데 그 색깔이 너무 이뻐서 사진을 몇 장이나 찍었는지 모르겠다.



 해도 이제 완전히 저물었고 기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와야 할 기차가 연착이 되었다.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가만히 앉아있기엔 모기가 계속 달라붙었다. 결국 나는 배낭을 멘 상태로 모기를 피하기 위해 계속 걸어다녔다. 나는 정말 모기가 싫다. 그렇게 모기를 피하기 위해서 발악을 했지만 결국 다리에 몇 방을 물리긴 했다.



 인도 기차역 플랫폼의 모습이다. 역시나 동영상은 와이파이에 연결되어있거나 PC에서 보는걸 추천한다.



운 좋게도(?) 기차는 한 시간 정도 밖에 연착이 되지 않았고 나는 기차에 타자마자 바로 짜이를 한 잔 마셨다. 노곤했던 몸이 좀 풀리는 기분이 든다. 이번 기차는 SL(Sleeper) 클래스 보다 한 단계 높은 3AC(에어컨이 추가 된 좌석) 클래스를 탔는데, 누워서 갈 수 있다는건 SL 클래스와 같지만 3AC 클래스에서는 침대 커버나 베개가 서비스로 나오고 좌석 티켓이 없는 사람의 접근이 금지 되어있다. 그리고 수시로 와서 쓰레기를 치워주고 가끔씩은 바닥에 세제도 한번 뿌리면서 닦기도 했다. SL 클래스와는 정말 차원이 다른 서비스였다. 대신 3AC의 가격은 SL에 비해 3배 이상으로 뛴다. 


 뉴델리에서 바라나시로 갈 때는 외국인 쿼터로 예약이 돼서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갔지만 이번에는 나 말고 5명이 인도인들이었다. 정확히는 6명이다. 2명의 모녀와 3명 자리를 부부와 어린 여자아이, 그리고 자리를 차지 하지 않는 갓난아이까지 네명의 가족이 있었다. 나는 인도인들이랑 말도 안 통하고 처음에는 어색해서 조용히 갔는데 옆에서 부부가 내가 중국인일까? 하고 궁금해 하면서 얘기를 하길래 영어로 한국인이라고 얘기를 해줬더니 조금 놀라면서 내가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을 반가워 했다. 



 역시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한국이었다. 나는 한국에 대해 설명해주면서 한글을 설명할 때 너희들의 영어 이름을 알려주면 내가 한글로 너희의 이름을 쓸 수 있어라고 하니까 궁금해하면서 처음에 SONAL의 이름을 알려줬다. 원래 내가 쓰던 글씨체하고는 전혀 다르지만 그들에게 또박또박 쓴 한글을 보여줘야 할거 같아서 신중하게 소 날 두글자를 적으니까 정말 잇몸이 보일 정도로 엄청 좋아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영어 이름을 하나씩 다 얘기해줬다. 그렇게 다 써놓고 내가 한글로 이름을 써주니까 너무 신기하고 좋다면서 핸드폰으로 내 노트의 사진을 찍어갔다.



 한국에 대해 얘기하다보면 그들은 북한과 한국의 관계를 궁금해하곤 한다. 그래서 난 한국전쟁이 언제 일어났고 도중에 중공군이 참전을 해서 우리나라가 후퇴를 했고 1953년 7월 27일에 남북이 분단되었다는 것도 얘기를 해줬다. 우리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에 한국의 남자들은 의무적으로 군대를 가야되고 나 또한 21개월 동안 군인으로 지냈다는 얘기를 해줬다. 


 그들은 한국의 물가도 궁금해 했는데, 먼저 내가 군대에서 받았던 월급 13만원이 인도 돈으로 얼마나 되는지 얘기도 해주고 한국에서 한 달 아르바이트를 하면 150만원 정도를 벌 수 있는데 이게 인도 돈으로는 얼마나 되는지 얘기해주니 좀 놀라워했다. 



 한창 얘기를 하면서 지내다가 다들 배가 고팠는지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기차를 타기 전에 아그라 칸트역에서 저녁 대신 먹을 바나나를 사서 탔는데 앞에 앉아있던 쉬바니(인도인 여학생이었는데 나이가 10대 후반 정도 되어보였다.)가 나에게 이걸 건냈다. 자기들이 기차에서 먹으려고 싸온건데 나한테 먹으라고 챙겨준 것이었다. 나는 인도식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있어서 먹기가 좀 꺼려졌지만 그들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었기에 한번 시도를 해봤다.   



 음식점도 아닌데 스푼이나 포크가 있을리 만무하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정말 리얼하게 오른손을 썼다. 평소에는 왼손도 자유롭게 썼는데 그들 앞에선 왼손으로 먹는것도 좀 아닌거 같아서 오른손으로 모든걸 해결했다. 그래도 이 음식은 정말 맛있었고 내 입맛에 맞았다. 약간 두릅을 된장에 버무린 듯한 식감과 맛이 났다. 



 내가 그들의 준 식사를 다 하고 손을 씻고 왔더니 나에게 이런 것도 챙겨줬다. 이건 인도의 디저트 중에 하나인데 정확히 무슨 음식인진 모르겠다. 그래도 이거 먹을 때는 숟가락으로 먹었다. 밥을 먹고 나선 딱히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이랑 노는 것을 좋아해서 갓난아이와 함께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시간도 늦었고 다들 자고 싶어하는 것 같길래 중간에 있는 침대를 펴고 각자 자리에 누웠다. 나는 맨 윗칸에 있어서 부담없이 누워서 갈 수 있었다. 



 3AC라 그런지 별 다른 걱정 없이 정말 편하게 잤다. 나는 우다이푸르에 도착한지도 모르고 자고 있었는데 저기 보이는 아버지가 날 깨웠다. 우다이 푸르에 도착했으니 일어나라고. 일어나보니 쉬바니와 그녀의 어머니는 우다이푸르 전에 내렸는지 없었다.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게 조금 아쉬웠다. 나도 이제 내 갈 길을 가기 전 그들에게 사진을 한번 찍겠냐고 물어보자 내 카메라를 보고 포즈를 취해줬다. 큰 아이는 어제 저녁부터 나를 보는걸 좀 부끄러워 하더니 - 사실 싫었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을 때도 저렇게 서있었다. 가족사진을 내 필름에 한 장 남기고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이젠 우다이푸르에서의 날들이 날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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