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니의 여행이야기 :: 바라나시,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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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도 여행 일정은 너무나도 짧았다. 바라나시는 정말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온 도시였지만 뉴델리 이후에 여행했던 첫 번째 도시가 바라나시였다. 여행은 터무니 없이 짧고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순 없었다. 내 다음 여행지는 아그라였다. 아그라를 가기 위해선 기차를 타는 방법과 슬리퍼버스를 타는 방법이 있는데 나는 일단 바라나시 정션역에 가서 외국인 창구를 통해 아그라 가는 기차를 예매하려고 했다. 


 오늘도 느지막히 일어났다. 한 10시 쯤에 일어났는데 아직 배가 고프진 않았다. 바라나시의 보트맨 철수의 동생 중에 만수가 있는데 만수는 짜이 집을 한다. 판데이 가트의 게스트 하우스 뒷 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만수 짜이를 발견할 수 있다. 짜이 한잔에 10루피, 생강을 타서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짜이를 한잔 마시고 전에 봐뒀던 사진관을 찾아갔다.


사실 인도 여행에 올 때 컬러필름을 다섯 통을 들고 왔었는데 막상 여기서 찍다보니까 필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게스트 하우스 뒷골목을 돌아다니던 중에 사진관이 있는걸 발견했고 거기서 필름을 사기로 했다. 필름 같은 경우는 인도에서 만드는 제품도 아니고 여기서도 수입하는 제품이라 가격은 인도 물가에 비하면 엄청 비쌌다. 한국 가격이랑 거의 비슷했다. 바가지 먹는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한국에서 똑같은 제품이기에 그냥 사기로 했다. 


 오늘은 나 혼자 버터빵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인도인들 사이에 자리를 하나 잡고 앉아서 버터빵과 짜이를 한잔 시켜서 후딱 해치웠다. 인도 여행을 하다보면 동북아시아에서 온 나의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인도인들이 있는데 여행을 시작한지 1주일 정도가 되었지만 그런 시선은 아직 어색했다.  


 고돌리아 까지 혼자 릭샤를 타고 간게 아니라 쉐어 릭샤라고 다른 사람들과 합석? 개념으로 같이 타고 갔다. 나는 인도인 가족들과 함께 갔는데 큰 딸과 작은 남자 아이,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까지 총 네 가족이 같이 타고 갔다. 남자 아이는 졸린지 아버지 품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아이의 아버지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자 흔쾌히 괜찮다고 했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아이를 깨우려고 툭툭 치는 것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자는 모습을 찍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렇게 이 사진 한장을 남겼다. 내가 인도여행에서 찍은 사진들 중에 가장 사랑하는 사진이다. 보고 또 봐도 정말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이 때 빠르게 달리는 릭샤 위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셔터 스피드를 가장 빠르게 올린 기억이 난다. 아마 1/2000이었나, 1/4000까지 올렸다. 그 만큼 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게 간절했다.  


 바라나시 정션 도착해 외국인 창구를 찾는것도 한참 걸렸는데 예매를 하기 위해 기다리는 것도 한참 걸렸다. 시간을 오래 투자했는데 내일 모래 출발하는 기차는 내일에나 와야 예약을 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조금 짜증이 났다. 그래서 알았다고 하고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내일 다시 오기는 정말 귀찮아서 슬리핑 버스를 예약하기로 마음을 먹고 다시 고돌리아로 돌아갔다. 



어제 먹었던 메구카페의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오늘 점심이 또 찾게 되었다. 역시 나 혼자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옆 자리에 혼자 온 남자 손님이 한명 있었다. 아무래도 한국인인것 같아서 말을 걸었는데 맞았다. 원래 따로 자리를 차지하고 먹다가 그 분이 오코노미야키를 하나 더 시키더니 나보고도 같이 먹으라고 주셨다. 이 형님은 인도 뉴델리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서 요리사로 일을 하시다가 1년을 일하고 다시 한국에 들어가기 전에 인도를 여행중이라고 하셨다.


 형님이 하신 얘기 중에 가장 와닿았던게 뭐냐면, 인도는 여행하기에는 좋은 나라인데 살기에는 좋은 나라가 절대 아니라는 거다. 나보고 생각해보라고, 여행 하면서 아침에 일어났는데 숙소 앞에 소 똥이 있으면 '그래, 여기는 인도니까 그럴 수 있지.' 생각할 수 있다. 근데 내가 출근하려고 하는데 사는 집 앞에 소똥이 가득하게 있으면 얼마나 짜증이 나겠냐고 하셨다. 나는 정말 그럴거 같아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형님과 라씨를 먹으러 가자는 얘기가 나왔고 계산을 하려 했는데 형님이 내 밥값까지 계산을 하시겠다 하셨다. 나는 아니라고, 내가 내겠다고 했는데 나는 돈 벌고 이제 한국 들어가는 입장이고 승열씨는 혼자 여행하는 입장인데 이정도 밥 값은 내주겠다고 얘기하셨다. 여행다니면서 정말 인복은 있는 것 같다. 너무 감사했다. 



 계속 시원라씨만 가다가 형님과는 블루라씨에 가게 되었다. 블루라씨도 라씨의 퀄리티가 정말 괜찮게 나왔다. 라씨는 정말 한국에 와서도 계속 생각난다. 아까 점심 때 형님께 얻어먹은게 있어서 형님이 계산하시기 전에 내가 먼저 라씨 계산을 했다. 아무래도 형님이 라씨도 계산하실 생각 같아보여서 내가 미리 계산을 했다. 역시나, 나가는 길에 내꺼까지 계산을 하려고 하시길래 먼저 계산을 했다고 하니 왜 그랬냐고 하셔서 나도 이건 제가 사겠다고 하고 같이 갠지스강가로 걸어갔다. 


 고돌리아의 시장 골목에서 갠지스강가를 찾아 걸어나오다보면 가장 먼저 만나는 가트가 화장터가 있는 가트다. 참 언제 가도 기분이 묘해지면서 연기도 많아서 오래 있기는 힘든 가트였다. 



 형님은 이 날 바라나시 공항에서 뉴델리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놓으셨는데 비행기 시간까지 남는 시간을 구경하신거였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부르셨다해서 마지막으로 셀카를 남기고 각자 갈길을 떠났다. 



 형님과 헤어지고 나선 나도 딱히 정해진 일 없이 갠지스강가에 앉아 가만히 멍을 때렸다. 전 날 저녁에 일본인 형님과 미현이와 함께 레바 게스트 하우스에서 김치찌개를 먹자는 약속을 했고 그 시간이 7시였다. 나는 그 때 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갠지스강에 앉아서 노트에 스케치를 하고 있는데 디아를 파는 사비나가 내 옆에 와서 내 노트하고 펜을 가져가더니 자기가 이것저것 막 그리고 자기 이름도 한글로 쓸 수 있다고 자랑하면서 "사비나"를 정확히 썼다. 아직도 내 노트에는 사비나가 그렸던 그림과 글씨들이 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보니까 그때의 추억이 팍하고 떠오른다. 



 일본인 형님과 미현이와 레바 게스트하우스에서 저녁을 먹었다. 역시 여행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각자의 여행 스토리를 많이 얘기하곤 한다. 이 형님이 인도 이후에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이집트로 들어가 아프리카 종단을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사실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 연락처 교환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데 이렇게 사진을 보다보면 궁금할 때가 많다. 또 인연이 된다면 어딘가에서 마주치겠지, 하는 생각을 하곤한다.


 저녁을 먹고 형님은 일찍 숙소에 들어가셨다. 미현이와 버니카페에서 맥주를 한잔 더 할까 했는데, 소담이와 태준이가 생각났다. 소담이에게 인스타로 지금 한국친구와 버니카페에 있는데 맥주 마시러 나오겠냐고 물어보니까 흔쾌히 나오겠다 했고 그 때 미현이와 태준이, 그리고 소담이까지 네 명의 인연이 시작하게 되었다. 버니카페에서 늦은 시간까지 수다를 떨다가 다음 날 바라나시에서의 일정을 같이 하자는 약속을 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많은 인연들을 만나서 즐거웠던 바라나시의 하루도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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