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니의 여행이야기 :: 함께여서 즐거웠던 바라나시에서의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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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날 저녁에 미현이와 태준이, 소담이와 맥주를 마시면서 이 날 오후 2시에 만나서 일정을 같이 하자고 했다. 그리고 이 날은 내가 바라나시에서 있던 마지막 날이었다. 바라나시 뒷 골목에 있는 여행사에서 슬리핑 버스를 예약 했고 저녁 9시 반 즈음에 바라나시에서 출발해서 아그라로 가는 버스를 타는 날이었다. 슬리퍼 버스의 가격은 1500루피였는데 이건 한국 돈으로 2만 5천원 정도가 되는 가격이다. 생각보다 비쌌다. 


 죠티페잉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5박을 끝내면서 아침에 방값을 내고 나왔다. 이 날도 바라나시를 구경하다가 넘어갈 생각이었기에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에다가 배낭만 맡겨 둘 생각을 했다. 방 값은 싱글룸으로 1박에 300루피였다. 하룻밤 자는데 5천원 정도 하는 돈이니 확실히 지낼만하다. 인도를 여행다녀보면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하루에 2만원에서 3만원 정도면 엄청나게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 확실히 물가가 우리 나라보다는 싼 편이라 금전적인 문제에선 여행하기 좋은 나라인 것은 확실하다. 



 오후 2시에 보기로 해서 그런지 하루 일정을 시작하기 위해 나왔음에도 시간이 꽤 남았었다. 같이 만나서 점심을 먹기로 했지만 아무 것도 먹지 않았던 때라 너무 배가 고파서 간단하게라도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바라나시의 보트맨 철수는 자기의 이름을 걸어놓은 식당도 운영한다. 철수 카페다. 철수의 보트는 한국인들이 찾아가는 보트기도 하니 역시 철수 카페도 한국음식 전문점이다. 카톡 아이디를 적어 놓았는데 표지판에는 카톡이 아니라 한글을 가덕으로 적어놨다.



 철수 카페를 들어가는 골목에는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아이들 중에서 내 눈에 딱 띈 아이가 있었는데 위에 옷도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모자까지 노란색으로 아주 귀엽게 입고 있었다. 표정은 또 얼마나 똘망똘망한지, 사진을 안 찍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인도 여행을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건 인물 사진을 찍는거였다. 사람들이 너무나도 흔쾌히 사진 찍는걸 승락해주고 아니면 찍어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 내에서는 너무나도 즐겁게 여행을 다녔다. 



 철수 카페에서 간단하게 비빔국수를 하나 먹었다. 다른건 양이 다 많아보이는데 비빔국수가 그나마 괜찮아 보였다. 아마 이 때 먹은 비빔국수가 인도에서 먹은 음식중에 가장 매운 음식이었을 것이다. 살짝 매콤하긴 한데 그래도 한국인 입맛에는 먹을만한 정도였다. 철수네 가게에서 점심을 간단히 먹고 철수에게 좀 이따 판데이 가트 앞에서 보자고 얘기하고 가게를 나왔다.



 오후 2시가 되어 판데이 가트 앞에서 미현이과 태준이, 소담이를 만났다. 애들은 아직 점심을 안 먹었다고 해서 아씨 가트까지 걸어가서 피자리아에 가려고 했다. 각자 파스타랑 피자를 하나씩 시키고 나는 철수 카페에서 먹었던게 아직 안 꺼져서 사과파이만 하나 시켜서 먹었다. 아까 철수 카페에서 철수에게 잘 먹었습니다는 힌디어로 어떻게 해야하나 물어봤었는데 철수가 "버후트 스와디스트 카나" 이렇게 하면 된다고 했다. 아마 잘 먹었습니다 라는 표현은 없고 비슷한 의미라고 한다. 정확하게 저 발음인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깜짝 놀란건 피자리아에서 나올 때 였다. 너무 맛있게 먹었던 식당이라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피자리아의 사장님에게 손을 모으고 "버후트 스와디스트 카나" 라고 했는데 사장님 표정이 엄청 바뀌더니 내 손을 잡으면서 너무너무 고맙다고 하셨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나도 좀 놀라서 나오면서 계속 인사를 하면서 나갔다. 역시 맛있으면 이렇게 티를 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역시 바라나시에서의 같이 보낸 하루는 딱히 정해놓고 한 일이 없었다. 그저 갠지스강을 돌아다니면서 잠시 앉아서 같이 멍을 때리며 수다를 떨고 쉬다가 또 움직이고 싶으면 강가를 따라 걷는게 다 였다. 계속 이런 얘기를 했지만 바라나시에서는 이것만 해도 시간이 잘간다.



 갠지스강을 따라 걷다보면 가트에 있는 건물의 벽에 이렇게 그림을 그려놓은 곳들이 많다. 어떤 가트에서는 벽화를 그리는게 메인이 되었는지 외국인들도 벽화를 그리고 있었다.



 왼쪽부터 태준이, 소담이 나하고 옆에가 미현이다. 바라나시에서 만났던 인연은 한국에서 계속 되어서 한국에 다들 입국하면 보기로 했는데 넷이 모이기로 한 날에 미현이는 컨디션이 안 좋아서 만나지 못했고 한국에선 태준이와 소담이하고 세 명이서 봤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길 위에서 많은 인연들을 만나지만 한국에서도 그 인연이 지속되는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바라나시 강가를 따라서 화장터가 있는 가트 까지 걸어갔었다. 나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화장터 가트보다는 더 위로 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화장터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보면 괜스레 기분이 숙연해진다. 우리나라의 장례식 같은 경우는 장송곡으로 각자의 슬픈 감정을 소리내어 표출을 하지만 바라나시의 장례식은 슬픈 감정을 숨기고 아무도 울지 않는다. 그래서 바라나시의 장례식에는 여자는 오지 못하게 한다. 괜히 울게 되면 그 영혼이 떠나지 못한다고 한다. 인도의 결혼식과 장례식 둘 다 굉장히 큰 집안일 중에 하나인데 장례식을 하는 경우에는 아들들은 머리를 완전히 밀고 손톱을 깎아서 화장을 할 때 같이 보낸다고 한다. 



 해는 저물어가지만 일몰 시간의 보트는 타지 않았다. 이 때 마지막으로 철수에게 오늘 바라나시를 떠난다고 너무 아쉽다고 얘기를 하면서 작별인사를 건넸다. 바라나시에 여행을 가신다면 꼭 철수를 만나보길 바란다. 보트만 생각하신다면 정말 좋은 보트를 탈 수 있고 인연으로 생각해도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이 날 저녁에는 내가 슬리핑 버스를 타러 갈 예정이여서 출발해야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수다를 떨었다. 미현이와 내가 처음 만났던 버니 카페에 가서 다 같이 킹피셔 맥주를 마셨는데, 이 때 소담이가 엄~청 기분이 좋아졌는지 이거 맥주에 방 탄거 아니냐고 계속 웃으면서 얘기했다. - 당연히 그럴 일은 없다. - 이 때 소담이가 터져나오는 웃음을 주체 못하는걸 보고 나도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애들하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주고 받고 내 배낭을 찾으러 다시 숙소에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Jyoti Paying Guest House의 사장인 비제이와도 작별인사를 하고 슬리핑 버스를 타야하는 정류장으로 가기 위해 고돌리아로 걸어 나왔다. 



슬리핑 버스를 타는 곳은 일반 도로 중간에 있는 주유소였다. 정확히 이곳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릭샤 왈라한테 Lahartara Gas station 까지 가달라니까 릭샤 가격을 높게 불렀다. 개인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가격(250루피)이었는데 여기서 흥정하다간 버스를 놓칠거 같아서 그냥 가자고 했다. 사실 이 상황에선 내가 후달리는 상황이여서 지고 갈 수 밖에 없었다.  



 여기가 버스 정류장이다. 버스가 이곳에서 출발하는게 아니라 다른 곳에서 오면서 나를 태우고 가는 방식이었다. 혹시라도 나를 안 태우고 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버스가 오기만 하면 확인을 했는데, 이 땐 내 인도 유심에 통화할 수 있는 금액이 있어서 버스 티켓에 나와있는 번호에 전화를 했더니 YUN이 맞냐고 알겠다고 그 시간에 널 데리러 가겠다고 연락을 했다.


혹시나 바라나시에서 슬리핑 버스를 타는데 Lahartara에 있는 kiran petrol pump라면 이 주소를 찾아보면 된다.

구글 맵스 위치 ▶ https://goo.gl/maps/AwpurMpMkFE2



그리고 버스가 도착했고 버스를 타면서 간단하게 나마스떼로 인사하니까 직원이 방긋 웃어줬다. 어디서 인도 말을 배웠냐고 하길래 여행 다니면서 써먹으려고 배웠다고 하니까 나에게 정말 멋지다고 해서 '아 차헤(좋다)' 하니까 또 놀란다. 슬리핑 버스의 내 자리는 이렇게 간단하게 누울자리가 있는 좌석이었다. 애초에 대중교통에서 잘 자는 성격이긴한데 인도의 도로 상태가 좋지도 않고 해서 버스가 많이 흔들렸지만 그래도 탈만 했었다. 아쉬웠던 바라나시의 일정은 끝이 나고 나는 다음 도시인 아그라를 향해 가는 버스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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