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니의 여행이야기 :: 멍 때리기만 해도 재밌는 바라나시 갠지스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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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나시에 들어오고 3일차가 되었다. 도대체 이 곳은 무슨 매력, 아니면 마력을 가지고 있는 곳일까. 인도의 다른 도시와는 다르게 바라나시에는 오랫동안 머물고 있다는 여행객들이 많았다. 오랫동안 이라는 내 기준은 짧게는 2주 정도에 길게는 몇 개월 동안 바라나시에만 있는 사람들을 얘기한다. 물론 나 또한 바라나시에 많은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기만 해도 시간이 잘 가고 재밌는 바라나시였다. 


 나는 워낙 사람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을 관찰한다고 해야하나. 특정 장소나 공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곤 한다. 특정 사람을 관찰하는게 아니라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의 공통된 행동을 찾아내려고 가만히 한 장소에서 구경할 때도 있다.


 바라나시의 하루는 오늘도 시작된다.



 바라나시의 여명은 오늘은 어제보다 더 아름다웠다. 어제는 갠지스강에 안개가 자욱하게 피었는데 오늘은 안개 대신에 여명 빛이 더 선명하게 갠지스강을 물들이고 있었다. 오늘도 역시 아침 날씨는 조금 쌀쌀했지만 이런 아름다운 풍경도 일찍 일어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저녁의 석양을 보는 것 보다 더 고요하고 차분하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철수의 일출 보트를 타려고 일찍 일어났다. 전 날 저녁에 일찍 자서 그런가 새벽부터 눈이 저절로 떠졌고 알람을 맞춘 시간보다 더 빨리 깨서 알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샤워를 하기는 귀찮고 이만 대충 닦고 나가는게 대부분이다. 모자를 들고 다니는건 이럴 땐 참 좋다. 


 이 날의 일출 보트도 역시 철수씨가 직접 노를 저었다. 어제 이미 일출보트를 한 번 타서 보트 타면서 듣는 이야기는 한번 들은 얘기고 가끔씩 궁금한게 생길 때만 철수에게 질문을 한다.



 해도 아직 다 뜨지 않았고 등불이 갠지스강을 비추고 있을 시간, 인도 사람들의 하루 일과는 갠지스강에 목욕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참 이럴 때 보면 인도 사람들은 굉장히 부지런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내가 부지런한 사람들만 보는 것일 수도 있겠다. 



 바라나시가 그립기도 하지만 철수의 서글서글한 미소와 그가 했던 유창한 한국 말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아마 내가 여행하면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인도인은 철수일 것이다. 바라나시에서 딱히 하고 싶거나 보고 싶은 것이 없이 머물렀던 나로써는 철수가 3시 반 즈음에 판데이 가트 앞으로 오면 그의 옆에 앉아서 이런 저런 수다를 떨곤 했다.  


 보트를 타고 다시 갠지스강가에 도착했다. 오늘도 역시 어제 먹은 버터빵이 또 끌렸다. 철수에게 버터빵 먹으러 가냐고 물어보니 가자고 해서 같이 탔던 한국인 분들에게 철수랑 같이 버터빵 먹으러 가겠냐고 하니까 몇 분이 같이 가기로 했다. 어제는 나도 같이 탄 분이 물어봐주셔서 간다고 했는데 오늘은 내가 그 역할을 했다. 어제 먹었던 버터빵 맛이 계속 입에 남아 있어서 그런지 오늘은 짜이 한잔과 버터빵을 2개를 먹었다. 이렇게 먹으면 50루피다. 버터빵이 하나에 20루피, 짜이 한 잔에 10루피.


인도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놀란 점이 여행객들의 패션이 너무 다양하다고 해야하나, 되게 편한 옷이나 뭔가 '인도스럽게' 입고 다니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 분들을 많이 봐서 그런가 나도 인도에서 옷을 좀 사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 뒷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옷을 파는 가게들을 미리 봐뒀고 지나가다가 괜찮아 보이는 곳에서 상의 두 벌과 바지 하나를 구매했다. 가격은 이렇게 해서 가격은 460루피. 사실 이건 좀 바가지 쓴게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숙소에 돌아왔을 때 내 옷을 보고 얼마에 샀냐고 물어봐서 알려줬더니 그럭저럭 괜찮은 가격이라고 했다. 



  숙소 옥상에 구경을 가보니 죠티 페잉 게스트하우스에서 키우는 개 -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 하고 여자 꼬마아이, 그리고 남자 애가 옥상에서 놀고 있었다. 남자 애는 옥상에서 연을 날리고 있었는데 내가 가만히 구경하고 있으니까 나한테 한번 날려보겠냐고 하더라. 근데 이 때는 연 날리기가 왠지 어려울 것 같아서 그냥 괜찮다고 하고 구경만 했다. 여자애는 내가 핸드폰을 들고 있으니까 가져가더니 자기가 사진을 막 찍었다. 눈이 엄청 똘망똘망하고 귀여워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딱히 오늘도 정해놓은 일정은 없었다. 점심 즈음에 배도 고파서 바라나시의 마지막 가트인 아씨가트까지 걸어가보기로 했다. 아씨가트에는 피자리아라고 피자집이 하나 있는데 이곳의 애플파이가 맛있다고 가이드북에 나와있었다. 아직까지 인도식은 계속 먹지 않는게 내 여행을 위해서 내린 선택이었다. 오늘은 점심은 피자를 먹을 생각이었다. 



 주변에 모래바람이 불어서 그런가 식탁 위에 모래가 잔뜩 앉아있었는데 걸레로 슥슥 닦아주고 내 의자도 슥슥 닦아준다. 그래도 갠지스강을 볼 수 있는 야외 테라스에 앉아있으니 불만은 없다. 피자 사이즈가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해서 옆 테이블을 한번 보니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한 판을 시키면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날은 혼자 밥을 먹으러 왔는데 내 옆 자리에 외국인 남자분이 앉아 있었는데 눈을 마주치자 간단히 인사를 했고 그렇게 몇 마디를 나눴다. 나이가 50이 넘어가는 프랑스 아저씨였는데 역시 혼자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일본에는 와본 적이 있지만 한국에는 아직 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정말 다음에는 꼭 한국에 와봐야 한다는 얘기를 하곤한다. 아저씨는 나보다 먼저 와서 먹고 있었고 식사를 먼저 마친 뒤에 먼저 떠났다.



 먹어본 사람들이 다들 맛있다고 입을 모았던 피자리아의 애플파이. 아이스크림은 올릴 수도 있고 안 올릴 수도 있다. 나는 기왕이면 풀 옵션으로 먹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아이스크림까지 올리는 것으로 시켰다. 나는 먹는 양이 좀 적은 편인데 이 날은 피자도 먹고 애플파이까지 먹기엔 조금 욕심을 부렸다. 애플파이 먹을 땐 배불러서 한참을 쉬었다가 다 먹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판데이 가트로 돌아왔다. 아무 생각 없이 갠지스강을 따라서 걷고 있는데 가이드북을 들고 어딘가를 찾는 한국인들이 보였다. 둘이서 여행을 온 한국인들이었는데 딱 봐도 한국인 같아 보여서 내가 먼저 어디 찾는 곳이 있냐고 말을 걸었다. 그러니 판데이 가트 뒤에 있는 숙소 쪽으로 간다고 하길래 길을 알려주겠다고 하고 판데이 가트까지 안내 해줬다. - 사실 그들이 오던 방향으로 쭉 걸어왔으면 판데이 가트가 보이긴 했었다. - 이 때 만난 친구들이 소담이와 태준인데 이 친구들의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겠다.  



 판데이가트에 앉아 있으면 만날 수 있던 친구. 사비나다. 오른쪽 애의 이름이 사비나인데 일몰 보트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으면 보트를 타는 사람들에게 디아를 판다. 디아는 꽃 장식에 양초가 있는 건데 불을 켜서 갠지스강에서 소원을 빌 때 쓰는 거라고 한다. 나는 처음에는 사비나가 와서 디아를 파는걸 다른 인도인들이 호객행위를 하는 것 같아서 사지 않았었는데, 매일 보게 되니 나도 장난도 좀 치게 되고 해서 오늘은 사비나에게 디아를 하나 샀다.   



 사비나에게 10루피를 주고 산 디아. 이 날 철수의 보트는 사람들이 꽤나 많아서 모터보트를 타고 갠지스강에 나갔다. 조금 나이가 있으신 한국인 단체 여행객들도 계셨고 꽤나 북적였는데 덕분에 사비나도 오늘은 디아를 많이 팔았다.



이 날 아침에 샀던 옷들과 신발까지 세트로 입고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아마 태준인가 소담이가 찍어줬던거로 기억한다. 이 때의 인연은 또 있는데 보트를 같이 탔던 분이 라이카 필름카메라를 들고 다니는걸 봤다. 나도 인도여행때는 필름카메라를 들고 다녀서 필름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분을 처음 봤고 필름 카메라를 쓰시네요? 하고 아는 척을 했는데 알고보니 사진작가님이었다. 작가님은 바라나시는 이번이 5번째이고, 이번에는 4개월 동안 바라나시에 머무는 중이라고 하셨다. 배민호 사진작가님인데 인스타그램에 간간히 흑백사진을 올리시곤 한다. 



 오늘은 일출도 이뻤는데 일몰도 너무 아름다웠다. 철수가 얘기하길 바라나시의 일몰을 매일 봐도 매번 다르다고 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얘기일 수 있지만 일몰 보기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그 말이 더 와닿았다. 어제의 일몰도 아름다웠지만 오늘 보는 일몰은 더 아름답게, 그리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이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이 때의 기억이 확 떠오르면서 또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해도 다 떨어졌고 보트를 탔던 사람들과 다 함께 갠지스강에 디아를 띄웠다. 디아를 띄우고 나선 나는 역시 내가 항상 하는 기도를 올렸다.


 "날씨 좋게 해주세요. 건강히 다니게 해주세요. 좋은 사람들 만나게 해주세요."


누군가는 나의 기도를 들었는지 오늘도 내가 원하는대로 되던 하루였다.



 아까 전에 보트에 나이가 좀 있으신 한국인 여행객분들이 있다고 했는데, 보트 위에서 그 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타게 되었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보트를 타고 철수에게 주는 비용을 한 어머님이 대신 내주셨다. 계속해서 괜찮다고 했는데 나이 들은 여행객이 젊은 여행객들에게 이런거라도 해주셔야한다고 얘기하셨다. 덕분에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보트에서 내려서 오늘은 저녁을 어디서 먹어야 하나 생각하고 있다가 작가님도 저녁을 먹겠다 하셔서 둘이 버니 카페에 가게 되었다. 작가님은 오믈렛을 보고 시켰는데 나온건 오므라이스가 나왔다. 버니카페의 라훌에게 이건 오믈렛이 아니라 오므라이스가 아니냐고 했지만.. 결국엔 그냥 드시기로 했다. 작가님은 평소에는 인도 현지식으로 끼니를 드시면서 하루에 100루피 정도로 하루 식사를 해결한다고 했다. 그리고 일식을 좋아하셔서 토요일에만 메구 카페에 가서 특식을 먹는다고 하셨다. 이 날 저녁을 먹으면서 작가님이 어떻게 사진작가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사진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인도 여행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다양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중간에 혼자 오신 한국인 여자분도 우리 자리에 합석해서 엄청 수다를 떨었다. 


 이 날은 정말 인복이 넘쳤는지 작가님이 저녁을 사시겠다 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정말 감사했다. 철수의 보트도 대신 내주시는 분이 계셨고 저녁도 작가님이 사주시고, 오늘은 정말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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