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17시간 동안의 즐거운 나의 집>
지난 동유럽 여행의 시작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해서
모스크바까지 한번에 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다.
참 좋은 기억도 많았고 안 좋은 기억도 있었지만,
당신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봐야 할 이유 몇가지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1. 사람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그냥 열차가 아니라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다.
이곳에선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몽골, 우즈베키스탄 등 여러 곳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실제로 진짜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함께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며 같은 기차를 타고 간다는 것.
서로 조금만 마음을 열면 그 속에서 우리는 더욱 쉽게 친해질 수 있다.
나의 펜과 공책을 빌려주면 마트리는 내 공책에 맘껏 낙서를 했고,
나는 마트리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 있는 사자를 그려주며 놀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러시아어도 할 줄 모르고, 이 친구들은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도
이렇게 서로 마음만 맞으면 어떻게든 대화할 수 있다.
로짐과 나는 말이 안 통해서 공책에 그림을 그려가며 대화를 나눴다.
그러면서도 박장대소까지 했다니깐?
횡단열차 꼬리칸의 삼총사였던 로짐과 세르기, 그리고 나
(구글 번역기를 다운 받아가면 그나마 대화하기 수월하다.)
바라빈스크역, 로짐이 떠나는 날.
로짐과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는 줄 알았더니 매점에 가서 엄청 큰 봉투에 먹을 것을 바리바리 사왔다.
그리고선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까지 창 밖에서 떠나는 우리를 배웅해주고 있었다.
내 눈에 뜨거운 물방울이 살짝 흘러 볼을 타고 내려왔다.
2. 풍경
블라디보스토크부터 모스크바까지 가는 일정 속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어쩌면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다.
원래 이르쿠츠크에 도착하기 전에는 바이칼 호수를 지나가지만
나는 바이칼 호수를 지날 때 해가 진 이후라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일출부터 일몰까지. 셀 수 없이 수 많은 나무들.
폐허가 되어 버려진 건물들.
사람들이 사는 마을까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는 동안엔 정말 여러 장면들을 보게 된다.
아직 사람들이 잠 들어있는 시간.
해가 살짝 뜨면서 새벽의 서늘한 빛이 기차 속을 물들인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봤던 일몰은 모든 순간이 감동이었다.
일상 속에서 일출과 일몰을 진득하게 보는 순간이 얼마나 있을까?
여기선 빼먹을 수 없는 하루의 일과다.
내 머리 속의 달력은 '지금은 5월이야'라고 얘기해주고 있었지만,
창 밖의 러시아는 나에게 '지금은 눈 내리는 겨울이야' 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곳엔 겨울이란 개념이 없을지도.
3.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는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면 된다.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과 햇반들이 있었지만,
결국엔 난 그걸 다 먹지 못하고 열차에서 내렸다.
기차 안에서 러시아 친구들과 친해지니 계속 나에게 이거 먹어봐라, 저거 먹어봐라 하면서
엄청 많이 줘서 다양한 러시아 음식들을 먹었었다.
이렇게 사람 냄새 난다는 것. 정이 넘치는 횡단열차라는 것.
횡단열차에선 창 밖을 구경하면서 멍 때리는 것과 자는 것이 일이다.
내가 자고 싶을 때 누워서 자면 된다.
아,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부터 모스크바까지 7일 가까운 시간 동안
7시간의 시차를 천천히 넘어가기 때문에 시차 적응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러시아 친구들은 카드 게임을 엄청 자주 했다.
우리나라에서 하는 카드게임이랑 룰이 달라서 결국엔 구경만 했다.
내가 이번 여행을 시작하면서 가져왔던 유일한 책.
<79만원으로 세계일주>
여행 시작하기 전에 샀지만 안 읽고 묵혀두다가 횡단열차에서 처음으로 개시했다.
이곳에선 그냥 아무 것도 안해도 좋았다.
기차 역을 벗어나면 핸드폰 데이터도 안되고 답답할 수 있지만
복잡한 머리 속은 비운 채
아무것도 안하면서 흘러가는 열차 속에 내 몸을 맡겼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탑승객, 다음 타자는 바로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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