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는 버스가 없다.
택시를 타든 지, 그랩, 볼트, 인드라이브 같은 공유 차량 서비스를 하든지.
아니면 썽태우를 타든 지.
썽태우란 녀석은 택시와 버스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녀석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치앙마이에 버스는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대중교통으로 인식될 만큼의 버스가 많진 않다. 그래서 관광객들의 우선순위에선 많이 벗어나는 듯하다.)
도로에 보면 일단 빨간색 차량들이 돌아다니는데 트럭을 개조한 건지 뭔지.
트럭 같지만 뒤에 보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두 줄로 깔려있다.
썽 + 태우
태국어로 썽은 2, 태우는 줄이란다.
좌석이 두 줄로 깔려있어서 썽태우.
아버지와 환갑 기념 여행으로 어딜 갈까 하다가 치앙마이를 오게 되었고,
부모님과 와이프와 넷이 왔기 때문에
미치도록 J인 것 같은(?) 나와 와이프는 A부터 Z까지 별에 별 선택지와 걱정을 사서 했다.
치앙마이 여행 마지막 날까지 썽태우를 타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했다.
일단 날씨도 더웠고, 썽태우를 타면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도 몰랐고. 그냥 쾌적하게 움직이는 게 좋아 보였다.
어찌 보면 난 마지막날까지 썽태우를 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행의 마지막 날. 저녁을 먹고 한성으로 치면 동대문 정도 되는 치앙마이의 타페 게이트 걸어왔다.
잘 구경하고 이제 공항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토요일 저녁에 열린다는 우아라이 야시장에 가보기로 했다.
타페게이트에서 우아라이까지 다시 인드라이브를 불러볼까 하다가 우리 넷은 그냥 썽태우를 타보기로 했다.
마지막 날이니까 한번 체험도 해볼 겸 타자고.
그런데 이 놈의 썽태우는 그냥 평소에 지나갈 때 보면 많이 보이더니 막상 타려고 하니까 잘 안 보인다.
길가에 가만히 서 있으니까 썽태우가 지나가면서 우리한테 빵빵~ 하면서 크락션을 울린다.
쳐다보니 조수석에는 할머니, 운전석에는 할아버지. 두 분 다 나이가 지긋하시다.
우아라이? 우아라이?
하니까 우아라이 간단다.
타기 전에 4 People. 120? 120? 120바트? 를 세 번은 더 물어보고 탔다.
썽태우란 녀석은 기본으로 1인 당 30바트(약 1,100원)가 고정 금액이다.
고정금액이 쓰여있음에도 몇 번을 되물은 이유는 인도여행 하면서 릭샤 기사들과 단 몇 백 원 가지고도 싸웠던 기억이 나서였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썽태우를 탈 때 현금이 없었다.
그럼에도 별 걱정 없이 탔던 이유는 치앙마이에서 현금을 쓸 일이 사실상 거의 없었다는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치앙마이에서는 진짜 여행 내내 QR코드로 택시 계산부터 가게, 노점 등 모든 계산을 다 했었고, 썽태우 타기 전에도 인터넷에 찾아보니 QR코드로 썽태우 요금도 된다는 걸 보고 탔었다.
이 날 현금은 마지막 마사지를 받으면서 1인당 100바트씩 팁을 주기로 하고, 와이프가 딱 402바트를 만들어놔서 이미 400바트는 냈고 와이프 지갑엔 딱 2바트(한국돈 70원)만 있었다.
썽태우를 타니 뭔가 치앙마이의 즐거움을 하나 더 알게 된 기분이었다.
릭샤 타고 다닐 때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탄 사람이 우리 밖에 없어서 사진 찍으면서 놀고 우아라이로 가게 되었다.
사실 난 가는 길에 썽태우 뒤 쪽에 있는 운전기사인 할아버지의 자격증과 거기 있는 QR코드를 찍어봤었다.
내리면서 계산하는데 미리 QR코드 인식을 해두려고.
근데 QR코드가 인식할 수 없다네?
뭐, 괜찮겠지. 내려서 할머니한테 물어보자.
차가 워낙 많아서 막히긴 했지만 우아라이에 도착했다.
우리는 내리고 나는 조수석 문쪽으로 걸어가서 QR코드로 결제하려고 한다고 얘기했다.
어, 근데 이 할머니 분이랑 영어로 전혀 대화가 안 되네?
나는 QR코드 얘기하고 있고 할머니는 무슨 얘기 막 하시는데 내가 못 알아듣고 있었다.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어.. 뭐지? 너무 대책 없었나?
내가 막 당황하고 있으니 옆에 택시 기사분인지 썽태우 기사분인지 남자분이 오셔서 영어로 무슨 문제 있냐고 물어본다.
내가 QR코드로 결제하려고 하는데 이 분들이 코드가 없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니 할머니에게 태국어로 물어본다.
그리고 나에게 이 분들 나이가 많으셔서 그런 거 사용 안 하신다고 한다고 전해줬다.
아뿔싸.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주변을 급하게 둘러보니 바로 옆에 세븐일레븐이 있었다.
그래, 편의점에는 ATM이 있을 테니 현금을 뽑을 수 있지 않을까?
ATM에서 뽑으면 엄청나게 큰 단위의 바트 밖에 못 뽑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냥 뽑자.
나중에 공항 가서 쓰든지 야시장에서 좀 쓰면 되지.
지갑을 안 가지고 다녔던 나는 어머니에게 현금 인출 되는 카드 하나만 달라고 했다.
카드를 들고 세븐일레븐으로 달려갔다.
여행 내내 무릎이 시큰해서 살살 걸어 다녔는데 이 때는 그럴 겨를도 없이 막 뛴 것 같다.
세븐일레븐에 들어가서 구석 같은 곳을 보면서 ATM이 있을 만한 위치를 찾아본다.
근데 안 보인다. 아무리 봐도 안 보인다.
와..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번뜩하고 들었다.
아.. 혹시 아까 나한테 말 걸어줬던 분이 QR코드가 된다면.
그분한테 QR코드로 송금해 주고 현금을 대신 내달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날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에게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가서 그냥 바로 물어봤다.
'QR코드 혹시 가지고 계세요? 제가 150바트 QR코드로 송금해 드릴 테니 120바트 이 분들에게 내주시면 안 돼요?'
하니까 알겠다고 한다.
은행 어플 같은 건지 켜서 본인 QR코드를 보여주신다. 어플 로딩 되는 와중에 할머니랑 뭐라 뭐라 얘기하신다.
정말 다행히도 QR코드로 150바트를 보냈고, 그 아저씨가 할머니에게 120바트를 주머니에서 꺼내서 주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떠났다.
너무 다행이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정말 별에 별 생각은 다 든 것 같다.
아저씨에게 격한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이제 우아라이 야시장으로 걸어 들어왔다.
분위기가 활기차다.
그렇게 야시장 구경을 시작하려고 하니 아까 그 아저씨가 갑자기 막 달려온다.
네가 보내준 돈이 자기한테 안 들어왔다고 하는 거다.
뭐지? 난 분명히 보내줬는데.. 내 어플에서 돈도 빠졌고.
순간 머릿속으로 최악의 수를 생각해 본다.
혹시 이거 돈 더 받으려고 거짓말하시는 건가?
만약에 그런 거라면 그냥 150바트 한번 더 보내고 끝내면 되는 거잖아..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 보냈는데 혹시 안 들어왔어요?
어플 다시 한번 켜서 확인해봐 주세요. 하니까 아저씨는 어플을 다시 켰고
150바트가 막 들어온 것을 다 같이 확인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주고 받는데 시간 차이가 좀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서로가 오해했다는걸 보고 서로가 미안하다. 고맙다. 하면서
마지막으로 아저씨와 인사를 다시 한번 하고,
우리는 치앙마이에서의 마지막 일정인 우아라이 야시장의 시끌벅적한 열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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