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니의 여행이야기 :: 시베리아횡단열차 여행기 #3 만남과 이별, 모스크바까지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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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마지막 여행기입니다. 5일차부터 모스크바 도착할 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원래는 정현이와 이르쿠츠크역에서 내려서 샤워실을 찾아보기로 했는데 이르쿠츠크엔 새벽에 도착이 예정되어있어서 가지 못했고 노보시비르스크역에 51분간 정차하는 김에 샤워실을 가기로 했다. 찾아보니 샤워실 정보가 잘 안나오길래 도움이 될까 해서 따로 포스팅을 하겠다.

시베리아횡단열차 선배인 하정이가 롤톤 감자가 그렇게 맛있다고 얘기를 하길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쇼핑을 하면서 두 개만 샀다.

맛은 평범하다. 인스턴트 맛인데 가루에 물 부으니까 꾸덕꾸덕 해지는게 좀 신기하긴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부터 하바롭스크 그리고 지금까지 이 놈의 비 구름은 왜 이렇게 우리를 쫓아다니는지 모르겠다. 모스크바에 도착하면 제발 맑은 날씨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하바롭스크에서 타서 3일 간 덤앤더머처럼 지내던 로짐이 바라빈스크에서 내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바라빈스크는 이 날 점심 즈음에 도착했는데 로짐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그가 내리기 전에 얼른 사진을 남겨뒀다.

나나와 세르기는 같이 모스크바까지 가는 일행이여서 마지막에 함께 내렸지만 로짐만 먼저 내린다니 기분이 좀 이상했다. 너무 쉽게 정을 붙히는 성격이긴 하다.

이르쿠츠크에서 내리신 여사님이 주고 가신 루카스 라떼를 꺼내 먹었다. 줄게 이거 밖에 없다면서 주셨지만 챙겨주시는 마음 하나 하나가 너무나도 감사했다.

바라빈스크에 도착해서 로짐과 진하게 작별인사를 나누고 "너가 그리울거야"를 러시아어로 번역해서 보여줬다. 로짐도 이제 갈 길을 가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열차 안에 노란 봉지를 들고 오더니 두고 나가버렸다. 우리 먹으라고 한 봉다리를 사놓은거다.

순간 벙쪄서 잘 가라는 말도 못해서 아쉬워 할 찰나 갑자기 밖에서 창문 두들기는 소리가 나길래 보니 로짐이 서 있었다. 로짐은 열차가 거의 출발할 즈음까지 밖에서 기다리다가 작별인사를 하고 떠났다.

참 사람과의 만남과 이별이 뭔지, 이 포스팅을 쓰면서도 눈물이 찔끔 날뻔했다. 로짐은 우즈베키스탄 사람인데 내가 언제쯤 갈일이 있을지, 기약 없는 작별이기에 더 아쉬웠다. 

세르기가 먹어보라고 준 햄. 먹고 있는데 세르기가 너 이거 뭔지는 알고 먹냐고 물어봐서 아까 살짝 동물 그림 본게 생각나서 코를 올리면서 돼지 소리를 냈더니 엄청 웃으면서 이거 돼지가 아니라 소라고 하더라.

바라빈스크역 다음에 도착하는 역 중에 옴스크역이 있는데 옴스크 역시 굉장히 큰 역이라 정차를 30분 정도 한다. 하는 김에 몸도 풀겸 밖까지 걸어갔다 들어왔는데 민트색으로 칠해진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러시아 건물을 보면 이런 색을 참 잘 쓴다.

세르기가 갑자기 위니! 하고 불러서 왜 부르지? 하고 쳐다봤는데 그 찰나에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는걸 봐서 포즈를 취했는데 반응한 찰나의 사진을 찍어버렸다.

 열차는 대부분 짧게 짧게 정차해서 그 시간에는 열차 밖으로 나가기는 무리다. 짧게 머물면 정말 정차해서 타는 사람만 타고 내릴 사람만 내리는 시간이다. 길게 정차하는 역이면 다들 나와서 몸을 풀거나 담배를 피는데, 차장님 몰래몰래 열차칸 사이에서 피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걸리면 잔소리 한 바가지, 엄청나게 뭐라 하면서 일단 경고를 주는 듯 하다.)

다음 날 일출 시간 즈음에 길게 정차하는 역이 있어서 잠시 나갔다왔다. 다소 쌀쌀한 바람을 맞으면서 몸이라도 풀어야 열차 안에서의 시간을 버틸만 하다.

횡단열차를 타면서 블로그에 포스팅 할만한 내용들을 작성해뒀다. 노트북은 좀 무겁긴한데 그래도 들고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여행 출발하기 전에 아버지가 이 노트북을 쓰시고 새로 노트북을 하나 사주신다고 할 때 살껄 그랬다. 가벼운거로. 조금 후회한다.)

먹을거로 가득해서 엄청나게 복잡하던 내 자리도 조금은 여유를 찾았다. 이게 그나마 좀 정리된 수준이다. 근 며칠 동안은 뭐 하나 둘 수 없을 정도로 꽉 차있었다. 

세르기가 갑자기 나한테 우리 친구 맞냐고 물어보길래 당연히 다! (응!) 이라고 대답하니까 웃으면서 봉지를 까기 시작했다. 빵을 사왔는데 먹어달라는거다. Friend, Help Me.

빵을 먹기 싫었던 눈치 빠른 나나는 세르기하고 친구 아니라고 장난을 쳤다.

약간 카스테라 같은 빵인데 안에 크림이 들어가있었다. 좀 달은 편이라 커피랑 같이 마시면서 3개를 먹었다. 한 개 먹고 그만 먹으려고 하면 한 개 더 주고 또 주는게 이 친구들이다.

멍하니 앉아 창 밖을 바라보는게 여기서 하는 일 중에 가장 많이 하는 일이다.

내일이면 드디어 모스크바에 역에 도착한다. 이게 열차에서 보는 마지막 일몰이었다.

역에 잠깐 정차했을 때 밖에서 무슨 터지는 소리가 나길래 보니까 폭죽을 터트리고 있었다. 꽤나 스케일이 크게 터지고 있었는데 아마 전승기념일 때문에 여기서도 행사를 한 듯 하다. 

러시아의 공휴일 중에 5월 9일 전승기념일은 엄청나게 큰 행사를 하는 날 중 하나인데,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이 러시아에게 무조건 항복을 한 날이 모스크바 시간으로 5월 9일이었다.

드디어 모스크바로 도착할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지금까지 6일이 넘는 시간을 열차에서 보냈지만 마지막날 잠에서 깨서 모스크바 도착할 때의 시간이 가장 오래 걸렸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열차를 함께 타고 온 나나, 하바롭스크 부근에서 타서 모스크바까지 같이 타고온 세르기.

이 친구들 덕분에 모스크바까지 재밌게 올 수 있었다. 세르기도 재밌게 대해줬지만 나나가 영어와 러시아어가 동시에 된다는게 정말 행운이었다. 내가 러시아어로 대화가 안되니 영어로 나와 대화하고 어느정도 번역을 해줬다.

드디어 도착했다. 세르기가 나에게 한마디를 남겼다. Welcome to MOCKBA! 

모스크바역에 도착하니 참 지난 일주일 간의 열차 속 일들이 다 거짓말 같았다. 나나는 열차 앞까지 마중 나온 부모님과 진한 포옹을 하고 세르기와도 작별인사를, 역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같이 모스크바까지 온 정현이와도 지하철에서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나눴다.

이렇게 쉬지 않고 달려온 시베리아횡단열차 여행은 끝이 났다. 이제부턴 러시아의 심장 모스크바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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