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니의 여행이야기 :: 그라나다 버스터미널의 따뜻함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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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여행에서 있던 썰을 푸는.. 그런 이야기를 적고 싶어졌다.

사실 이 이야기는 내 예전 여행기에 있던 이야기고, 어떤 분은 이미 알고 있는 얘기일 수도 있다.


그라나다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는 도시 이름인데, 그라나다에는 알함브라 궁전이 있다.

알함브라 궁전은 워낙 유명한 건물이기도 한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드라마가 나오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더 친숙해졌을 것 같다.


올해 스페인 전체적으로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는데 스페인은 열정의 나라(?) 라는 이름답게 날씨도 뜨겁다.

여름에는 뜨겁겠지만 겨울에는 다른 나라들보다 따뜻한 편이다.


우리나라가 0도 가까이 되며 얼어죽네 마네 하면서 패딩을 입고 다녔을 때 스페인 그라나다의 날씨는 매우 따뜻했다.


날씨도 따뜻했지만 그것보다 더 따뜻한, 온기를 느낀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있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2015년 2월 11일, 벌써 4년전이구나.



첫 유럽여행이었고, 스페인 여행 루트는 세비야에서 시작해서 그라나다를 거쳐 마드리드, 바르셀로나로 가는 일정이었다.

이미 세비야에서 너무나도 멋진 추억을 만든 나는 그라나다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이제 마드리드로 갈 시간이었다.


버스 예약 같은건 대부분 해놨던 나지만 알사버스 예매가 잘 안되길래 현장에서 구매하려고 생각했던 나였고,

오후 2시 버스를 타고 가면 마드리드에 저녁 시간에 딱 도착하겠구나! 싶었던 나는 여유롭게 오후 1시 즈음에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기로 했다.


실제로 그러기도 했고.


오후 2시 버스의 좌석이 여유롭다는걸 이미 알고 왔지만 이런..

버스 티켓 창구의 줄이 너무나도 길었다. 뭐든지 빨리 빨리 해야하는 우리나라랑 다르게 유럽의 여러 나라를 다녀보면

이 사람들의 업무 처리 속도는 정말 느긋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럽 가면 처음에 굉장한 답답함을 느끼는 부분 중 하나가 이럴 때 나타난다. 



나 역시 느긋하게 기다리며 창구에서 티켓을 사려고 했는데 역시나, 스페인에선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았다.

오후 2시에 마드리드 가는 버스를 탄다고 하는데 나이가 좀 있어보이는 남자 직원이 알아 듣질 못했다.


그래서 난 마드리드만 연신 외치면서 손가락으로 시간을 보였는데..

여기서 내 실수가 나온다.


그 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오후 2시라고 생각을 안하고 14시라고 얘기한다고 손가락을 1개와 4개를 펼쳤다.


그렇게 얘기하니 티켓이 없다면서 다음 티켓을 끊어준다고 한다. 그래서 난 오케이라고 했지.


이제 버스를 타러 가야지~ 하면서 티켓을 보니까 이게 웬걸? 오후 5시 버스티켓이잖아?


오후 5시에 버스를 타면 3시간이나 기다려야 하고 마드리드에도 늦은 밤에 도착하는데.. 모든게 꼬인다.


근데 티켓 창구가 아니라 옆에 티켓 판매하는 기계가 있었다. 기계를 보고도 그냥 확실하게 창구에서 구매하자 하고 기다린건데..

오후 2시 티켓 자리가 없어서 5시 티켓을 줬나? 하면서 보니 오후 2시 버스에 자리가 있었다.


일단 오후 2시 버스 표를 구매했다. 구매하고 나니까 뭔가 허무했다.


---


그대로 오후 2시 버스를 타면 내가 타지 않을 오후 5시 티켓은 그냥 버리는 꼴이 되었고 환불을 받으려고 했는데,

또 줄이 너무 길었다.


5분, 10분 기다려서 1시 50분쯤 되어도 내 앞에 줄은 줄어들 생각이 없었고 나는 발을 동동 굴리다가 결국 앞에 있는 할머니와 아줌마에게 표를 보여주면서..


(내가.. 오후 2시 티켓을 타야 하는데.. 오후 5시 티켓을 사버렸어.. 근데 나 이거 취소 해야돼..) 라는 눈빛으로 표를 막 보여주며

조금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칸셀라시온.. 칸셀라시온만 얘기했다.


cancelación : 스페인어로 취소


처음에는 못 알아 듣다가 내가 말하는 뜻을 이해하셨는지 창구의 줄을 들어주면서 


'파싸 파싸!' (지나가~)


라고 얘기하시는거다. 결국에 나는 사람들의 호의 덕분에 프리패스로 안 기다리고 창구 앞까지 한번에 가게 되었다. 



창구 앞으로 가서 아까 나이가 좀 있어보이는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아저씨는 좀 퉁명스럽게 스페인어로 나한테 뭐라 뭐라 하더니 내가 못 알아듣자 영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을 불렀다.


그 젊은 여자 직원이 나한테 얘기하길 '너 줄을 넘어오면 안된다. 다시 줄 뒤로 돌아가라' 라고 하니까 


옆에 있던 스페인 청년이 스페인어로 뭐라 뭐라 설명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먼저 지나가라고 해서 온거다. 라고 했겠지.

그리고 나한테는 내꺼 끝나면 바로 할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라고 영어로 나한테 얘기해줬다.


줄 앞에 서있던 어떤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스페인어로 나한테 막~~ 뭐라고 소리쳤는데,

그러니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다 내 입장을 변호해주듯이 얘기를 해줬다.


20퍼센트 환불 수수료가 있다고 했으나 나는 당연히 괜찮다 했고 2시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나는 이 모든 사건(?)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캐리어를 끌고 막 달려가기 전에 뒤돌아보는데 아까 그 할머니하고 아줌마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90도 인사를 하니까 나를 보며 엄마 미소를 짓던 그 때가 아직도 아련히 기억난다.

사실 그 할머니와 아줌마의 얼굴은 이제 기억나진 않지만 그 때 들었던 파싸! 목소리는 아직도 기억난다.   



어떻게 보면 내 실수에서 시작된 일이고 그냥 20유로 환불을 안 받고 갔다면 이 고생을 안해도 됐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 돈을 포기할 수 없었고.. (당연히 돈은 소중하니까)


그렇게 내가 가지고 있는 그라나다의 마지막 기억은 사람들의 따뜻함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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