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니의 여행이야기 :: 르네상스의 전성기, 피렌체 대성당과 조토의 종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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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렌체는 - 혹은 플로렌스 - 르네상스 시절 엄청나게 발달한 도시 중 하나였다. 먼저 르네상스에 대한 설명부터 천천히 시작하겠다.


 르네상스는 14세기에서 16세기경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발생한 문화혁신 운동인데, Renaissance 라는 프랑스어에서 비롯되었다. 르네상스란 재생되다, 다시 대어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로마 시절의 이탈리아 지역이 가지고 있던 문화의 황금기를 되살리자? 라는 것으로 시작이 되었다.  



 건축사적으로 봤을 때 르네상스는 로마네스크 - 고딕 - 르네상스순으로 진행이 되며 고딕 양식 이후에 등장하는 양식이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476년을 기준으로 이후 약 1000년 동안을 중세시대로 보는데 르네상스 시절 기록에는 이 기간을 문화의 암흑기라 칭한다. 


 고딕이란 이름은 고트족에서 비롯되었는데 고딕이란 이름을 르네상스 후기에 지은 것이다. 르네상스 시절의 사람들이 고트족의 문화에서 시작된 아주 야만적인 양식이라고 이를 까내리면서 고딕이란 이름을 붙힌 것이다. - 상대적으로 르네상스가 더 우월하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고딕 양식을 폄하한 것이다. 



 유독 피렌체에서 르네상스 문화가 발달한 이유는 메디치 가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메디치 가문은 메디치 은행도 운영하며 당시 교황의 주된 은행 역할을 할 정도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던 가문인데, 위대한 로렌초라 불리는 로렌초 데 메디치가 가문을 이끌던 시기가 최전성기였다.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 시절 활동하는 건축가, 예술가, 화가, 발명가들에게 이유를 불문하고 그들의 활동을 위해 금전적인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고 돈의 걱정이 없어진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맘껏 발휘하기 시작한다. 메디치 가문 덕분에 르네상스 때의 예술은 엄청난 발전을 했으나 그들을 지원해주던 메디치 가문은 너무 많은 돈을 지원해준 바람에 오래가지 못하고 망하게 된다.  



 르네상스 얘기는 이정도로 하고 피렌체 대성당 얘기를 하자면 이 건물은 이전에 산타 레파라타 성당이 있던 자리에 지어졌고, 피렌체에도 다른 도시에 버금가는 대성당이 지어져야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시작됐다. 외관은 흰색, 붉은색, 초록색의 대리석으로 지어졌다. 



 피렌체 대성당의 가장 하이라이트가 되는 부분은 바로 이 돔이다. 전후무후한 벽돌로 지어진 팔각형의 돔인데 이걸 브루넬레스키의 돔이라고 부른다. 돔에 대한 설명은 밑에서 설명을 이어가도록 하겠다. 



 대리석으로 마감이 되어있는 외관에 비해 내부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검소? 해보인다. 르네상스라는 양식의 특징답게 눈길을 확 끄는 휘황찬란 함은 없지만 구조적인 비례, 균형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피렌체 대성당은 입장할 때 통합권을 구매할 수 있는데, 통합권으로 피렌체 대성당, 조토의 종탑, 지하에 있는 박물관, 산 조반니 세례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여행할 때 지불한 통합권 금액은 10유로였는데, 포스팅을 하면서 찾아보니 지금은 18유로로 확인이 되었다. 박물관 내부에는 피렌체 대성당에 대한 모델이나 역사, 구조적인 해결을 위해 어떤 실험을 했는지 알 수 있다.



 피렌체 대성당 옆에는 르네상스의 예술가 조토의 이름을 따서 만든 조토의 종탑이 있다. 피렌체 대성당은 오랜 공사기간에 걸쳐 건설되었기 때문에 책임 설계자가 죽었을 경우 다른 이로 대체가 되었는데 조토 역시 피렌체 대성당과 조토의 종탑을 공사기간에 맡은 적이 있다. 종탑은 조토가 죽고 나서 그의 제자들이 완성시켰다. 



 피렌체 도심지에서 이런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은 피렌체 대성당의 돔, 큐폴라와 조토의 종탑이다. 돔을 먼저 가기 전에 조토의 종탑에 올라왔고 브루넬레스키의 돔을 볼 수 있었다. 피렌체 대성당은 시공 당시에 이 돔만 남기고 건설이 완료되었다. 돔을 시공하는데 계속 무너졌기 때문이다. 



 결국에 돔 부분만 현상설계를 하게 되었는데 - 여러 개의 계획을 받아 가장 나은 안을 선정하는 것 - 로렌초 기베르티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의 계획안 중에 브루넬레스키의 안이 당선이 되었다. 콘크리트가 아닌 벽돌로 지어진 이 돔은 37000톤에 육박하며 4백만개 이상의 벽돌이 사용되었는데 철저하게 수학적으로 계산이 된 계획안이었다. 



 피렌체 대성당 옆에 있는 산 조반니 세례당의 이 문도 현상설계로 진행이 되었다.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의 안이 마지막에 남았고 공동작업을 제안했는데 브루넬레스키가 공동작업은 하기 싫다 하여 기베르티가 문을 만들었고 이 문은 천국의 문이라 불리게 되었다. 


 돔의 현상 경기에서 브루넬레스키가 이겼던게 당시에 큰 사건이었던건 기베르티가 이 문의 작업을 하면서 사회적인 평판이 엄청 올랐을 때였기 때문이다. 



산 조반니 세례당의 내부 장식은 조토의 종탑을 설계한 조토가 계획하였는데, 조토라는 사람 역시 르네상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조토는 르네상스 건축이나 예술에 굉장한 능력을 선보였고 생전에도 그 명성이 자자했고 사후에도 르네상스 시대의 전성기를 열었던 사람 중에 한명으로 평가받게 된다. 



 피렌체 대성당의 내부 모습과는 달리 산 조반니 세례당은 규모는 작았지만 내부가 굉장히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이곳은 피렌체에 남아있는 종교 시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산 조반니 세례당을 구경하고 주변에 있는 피자집에 가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브루넬레스키의 돔을 올라가보기로 했다. 피렌체 대성당에 들어가면 이렇게 큐폴라를 향해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 



 브루넬레스키의 돔은 완전히 뒤덮혀있는게 아니라 끝 부분이 비어있고 그 부분을 통해 외부의 자연광을 유입시킨다. 로마 판테온의 경우는 돔 형태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 부분이 비어있다. 판테온에 대한 건축적인 설명은 나중에 로마여행기에서 쓰도록 하겠다.  



 피렌체 대성당의 큐폴라에 올라오니 조토의 종탑 부터 시작해서 피렌체의 모습이 정말 한 눈에 보였다. 파리 같은 경우는 라데팡스 지역도 있고 몽파르나스 타워도 있어서 현대적인 건물이 중간 중간 섞여있었는데 피렌체는 정말 중세 도시의 모습을 보존하려고 노력한 모습이 보였다.



 지어지고 세월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이렇게 금이 간 곳도 있었다. 워낙 오래된 건물들이 많기 때문에 여행을 다니다보면 지속적으로 보수 공사를 하는 곳이 많다.



 피렌체에 지어진 건물들의 지붕은 벽돌을 사용해서 그런지 다 붉은 계열을 띄고 있고 가장 메인이 되는 이곳, 피렌체 대성당의 돔 지붕도 기존의 건물들과 같은 색의 벽돌을 사용하고 있다.



 큐폴라에 올라가서 한참을 구경하다가 내려왔다. 이런 도시의 모습은 정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사진으로 보고 공부도 했던 피렌체 대성당의 돔에 올라왔다는 사실이 참 행복했다.



 르네상스 때 가장 번성했던 피렌체답게 피렌체 대성당 역시 대표작으로써 정말 만족했던 건물이었다. 고딕양식의 성당은 없던 신앙심도 생기게 만드는 느낌이 든다면 르네상스 양식의 성당인 이곳은 가만히 보면 볼 수록 더욱 깊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었다. 


포스팅하면서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한국 Wikipedia의 피렌체 대성당 문서를 보고 일부 참조하여 적었습니다.


참고문서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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