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니의 여행이야기 :: 유대인 학살의 비극이 담긴 곳,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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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44일차 (18. 6. 14) 


아마도 여행기 중에 가장 쓰기 힘든 날이 아닐까 싶다.

쓰려고 마음 먹은 지금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 날의 기억을 되살리다 보니 감정, 기분도 같이 따라오는 듯 하다.


워낙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장소라 텍스트가 다른 포스팅보다 좀 길어질 수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는 법>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는 법은 버스를 이용하는게 가장 좋은데, 크라쿠프 버스 터미널에서 오슈비앵침. Oświęcim 가는 버스를 타야한다. 

오슈비앵침 가는 버스는 사진처럼 다소 작은데 편도로 12즈워트, 한국돈으로 약 3600원이다.


 갤러리아 백화점 안에서 크라쿠프 버스 터미널 쪽으로 가면 전광판이 있는데 거기서 오슈비앵침을 찾아야한다. 버스 기사에게 티켓을 살 수 있고, G구역으로 써져있으면 지상층이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야한다. 


버스가 자주 있진 않고 대략 1시간에 1대 꼴이다. 가는데는 편도로 1시간 반 정도 걸리고 아우슈비츠 수용소 1 주변에 내려줘서 금방 찾아갈 수 있었다. 

 - 따로 포스팅 할까 하다가 급하게 갔던지라 사진 찍은게 많이 없어서 여기에 길게 쓴다. 



흔히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불리는 이곳은 추모의 장소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이다. 이곳은 두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있는데 아우슈비츠가 1수용소 비르케나우가 2수용소로 불린다. 둘 사이엔 셔틀버스가 운행하고 있고 대략 5분~1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시즌에 따라 입장시간이 각각 다른데, 오픈 시간은 아침 7시 반으로 동일하고

폐장시간이 1월 3시, 2월 4시, 3월 5시, 4~5월 6시, 6월~8월 7시, 9월 6시, 10월 5시, 11월 3시, 12월 2시까지로 다르다.


내가 방문한건 6월이니 7시까지 개장했고 오전 10시 이전이나 오후 4시 이후에 무료 입장이 가능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1은 무료 입장 시간 이외에는 개인 입장이 불가능하고 무조건 가이드 투어를 통해서 해야한다. 

그래서 뮤지엄2를 보고 오후 무료 입장 시간을 이용해서 1을 볼 수도 있고, 오전 10시 이전에 입장해서 1을 보고 그 후에 2를 보는 경우가 있다.


수용소 2는 시간과 관계 없이 갈 수 있다.   



 어제 호스텔에서 만나서 같이 수용소에 동행한 수민누나. 누나가 메고 있는 가방 사이즈보다 더 크면 짐 보관소에 맡기고 들어가야한다.

난 백팩을 메고 갔다가 짐 보관소에 맡기라고 해서 갔는데 4즈워티를 받는다.


 아, 그리고 무료 입장 하시는 분들은 25 즈워티를 (한화 약 7500원) 주고 가이드북 꼭 구매하시길 바란다. 설명이 굉장히 자세하게 되어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입구.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집단 학살 수용소 중에 가장 큰 규모였고 거대한 규모의 수용소가 그대로 보존되어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소름 돋는 지도. 아우슈비츠에 끌려온 수감자들이 어느 도시에서 왔는지 표시한 지도다. 정치범, 유태인, 동성애자, 폴란드인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끌려왔다.



저런 기차 속에 사람들을 완전 우겨 넣어서 수용소로 데리고 왔다. 수용소를 관리하는 사람들을 SS친위대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사람들에게 어디로 가는지, 어떤게 기다리고 있는지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도착해서 하는 선별 과정에서 낙오된 사람들은 "샤워"를 해야한다고 속여서 옷을 벗긴 다음 가스실에 보내 바로 질식사를 시키고 단체로 화장을 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거린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의 지도. 지금 보고 있는 곳이 오른쪽 밑에 있는 아우슈비츠 Museum 1 이고 왼쪽에 있는 큰 규모의 수용소가 비르케나우 수용소다. Museum 2 라고 불린다.



내가 사진으로 가져온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다. 보면서 멘탈이 나가서 사진을 찍지 못한 것도 많은데 수감자들의 안경부터 머리카락, 심지어 머리카락으로 만든 직물도 있다.


 이렇게 목발이나 보철물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은 강제 노역에 부적합한 인력이므로 수감되는 즉시 가스실로 보냈다.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수감자들의 신발. 사진으로 봐도 소름 돋는데 실제로 가서 보면 더 소름돋고 멘탈이 나가고 머리 속에 우울한 기분이 가득하다.



수용소에 처음 오게 되면 일단 옆 모습, 앞 모습, 그리고 두건을 쓴 상태로 45도로 찍은 사진까지 3장을 남겼다고 한다.



흔히 우리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대한 영화를 보면 볼 수 있었던 줄무늬 옷. 쉰들러 리스트나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등의 영화가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 되었던 사람들의 사진. 애석하게도 여기 걸려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정말 한 명도 빠짐 없이, 전부 다. 이런 사진이 여기에만 있는게 아니라 복도에 완전 가득하다. 


그들의 실제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기분이 더 우울해졌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 된 어린이들. 이런 사진이 남아있다는게 참 대단하다. 



 수용소 감옥. 여기가 메인은 아니고 지하 부분이 메인인데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있다. 지하의 암흑실에선 누울 수 없는 공간에 들어가 지내는 방도 있는데 거기서 3일에서 10일까지 선 채로 감금되었다고 한다. 내가 그렇게 눕지도 못하고 시간을 보낸다면 정신이 이상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왼쪽에 있는 건물은 10블록. 의학실험을 하는 곳이었다. 10블록 창문은 다 가려져있어서 외부를 볼 수 없었는데 한 마디로 인체실험을 하는 장소였다. 대량 불임, 약품 테스트, 질병의 잠복기 확인 등 아무런 마취 없이 사람들을 고통스럽던 말던 자기들의 경력을 위해 인체실험을 감행했다. 



10블록과 11블록 사이 안마당에 있는 죽음의 벽. 이곳은 가스실에서 죽은 수감자들이 아닌 총살 당한 사람들이 죽은 곳이다. 1944년 초 독일군이 이곳을 허물었는데 이후 복원되었다.



아우슈비츠에 담겨있는 세월의 흔적. 그대로 이 정도로 보존이 되어있다는 것이 대단하다.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지도대로 수용소를 둘러보면 처음에는 수감자들이 실제로 사용하던 물건들을 볼 수 있고 후반부로 갈 수록 기록이나 역사에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다.


영어로 써져있는게 대부분이라 적당히 둘러보고 지나갔다. 유대인에 관련된 장소라 그런지 정말 특이하게 히브리어로도 써져있었다. 



이 방은 아우슈비츠에 온 수감자들의 한번 올 때 얼마나 왔고 바로 처형된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적어 놓은 방이다.



가스실로 가는 길목에서, 어쩌면 이게 수감자들이 마지막으로 보는 광경 중에 하나가 아니었을까.



가스실로 가는 길에 보이는 교수대. 초대 수용소 소장이었던 SS 친위대 중령 루돌프 회스를 이곳에서 교수형에 처했다고 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곳. 가스실이다. 가장 보고 싶었고 가장 슬펐던 공간으로 기억된다.



가스실 벽에 남아있는 수감자들의 흔적. 정말 사진으로만 봐도 소름끼친다. 이곳에서 지클론 B를 사용해 수천명의 유태인과 소련군 전쟁포로들을 집단학살했다. 


나중에 가스실 천장의 구멍을 SS 친위대원들이 막아버렸는데 이후에 복원한 것이다.



가스실 바로 옆에는 소각장이 있는데 하루에 340구까지 소각이 가능했다고 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Museum 1)과 비르케나우 수용소 (Museum 2) 사이에선 무료 셔틀이 있다. 다만 다시 크라쿠프로 돌아가기 위해선 뮤지엄 1로 돌아와서 버스를 타야한다.



비르케나우 수용소에 도착하니 흐린 날씨 속에 생기는 빛 내림이 있었다. 



 비르케나우 수용소는 시간에 관계 없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고 역시 배낭도 들고 올 수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만 입장에 제한이 있다. 다만 비르케나우 수용소는 훨씬 큰 규모에 비해 보존되어있는 곳이 거의 없는 편이다. 


 수감자들을 태우고 들어온 철로. 입구부터 800m 안 까지 철로가 남아있다.



오히려 남아있는게 없어서 더 황량한 기분이 든다. Museum 1에 비해선 그나마 멘탈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걸을 수 있었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었지만 역시 기분이 좋은 장소는 아니었다.  



크라쿠프로 돌아가는 버스 막차 시간 때문에 비르케나우 수용소는 간단하게 둘러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는 Museum 1을 보고 Museum 2를 본게 다행이었는데 2를 보고 1을 봤다면 우울한 상태에서 버스를 탔을 것이다. 



800m의 철로 끝에 있는 추모비. 신기하게도 각기 다른 언어로 써져있는데 이 수용소에 있던 수감자들이 많이 사용한 주요 언어 23개로 쓰여진 추모비다. 각각 다른 언어로 써져있다. 



비르케나우 수용소에 있는 가스실의 잔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봤던 가스실은 완벽하게 보존되어있다는 것이 참 놀랍다. 여기는 잔해만 남아있다. 사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보다 비르케나우 수용소의 규모가 훨씬 크다. 둘러볼건 그렇게 많지 않지만. 



화장터에서 화장한 시체들을 이 연못에다가 던져버렸다는데 지금 와서 보고 있으니 기분이 퍽 나빠진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잔인해질 수 있지?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생각이 든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는 정말 정말 우울해지는 공간이다.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느낄 수 있는 곳. 폴란드에 온 이유를 정말 딱 한가지만 꼽아보라면 아우슈비츠 수용소라고 대답할 정도로 와보고 싶은 공간이었다.


 정말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장소이고 유명한 장소도 맞고 이곳에 왔다는 것 자체만으론 굉장히 기분이 들떴지만, 한 바퀴를 다 돌고 나선 가슴 한켠에 먹먹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이 날 날씨도 우중충해서 그런지 더 크게 느꼈달까.


 이런 공간은 한번의 방문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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