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니의 여행이야기 :: [인도] #7 아그라, 그리고 우다이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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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인도여행은 굉장히 짧은 편이었다. 한정된 기간 동안 인도에 간 나는 바라나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 그리고 라자스탄 지방을 둘러 보는 것 까지가 일정이었다. 애초에 인도에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술 마시다가 나온 얘기에 즉흥적으로 인도에 갔을 뿐.

그래서 인도에 어떤 도시들이 있는지도 잘 몰랐다. 하지만 인도에 발을 들이고 난 순간부터 너무 짧았던 내 일정이 두고두고 아쉬웠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겠지.


바라나시는 정말 매력적인 도시였다. 매력적이라는 표현이 맞는걸까? 사실 매력적이라는 단어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도시라고 생각된다. 우연찮게 사진작가로 활동하시는 분을 바라나시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분은 바라나시를 이렇게 얘기하셨다. 인도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인도 그 자체라고.

결국 나는 아쉬움을 삼킨채 바라나시를 떠나게 되었다. 



바라나시에서 만났던 한국인 친구들. 오른쪽에 같이 걷고 있는 두 명의 친구는 내가 갠지스강가를 걷다가 가이드북을 들고 판데이 가트를 찾길래 한국인이구나 싶어서 길 안내를 해줬다. 그 후로 바라나시에서 하루 이틀 정도를 같이 하게 되었다. 

버니카페에 저녁을 먹으러 간 적이 있었다. 나는 구석진 자리에 혼자 앉았는데, 다른 테이블에 일본인 처럼 생긴 여자애 한명하고 일본인 남자, 그리고 서양 남자애 한명이 앉아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얘기하는 것을 보다가 나도 대화가 끼게 되었는데 일본인 처럼 생긴 여자애는 한국사람이었다. 그 친구가 사진에서 왼쪽에 있는 친구다. 


바라나시 외곽에 있는 어느 주유소에서 슬리핑 버스를 타고 가다가 또 이름 모를 고속도로 중간 어딘가에 내리게 되었다.

거리를 보아하니 아그라 시내하고는 꽤나 거리가 있다. 이 거리를 걸어가기에는 조금 무리고 있고, 아무래도 바가지를 좀 쓴거 같지만 릭샤를 타고 타지마할로 가게 되었다. 



릭샤를 타고 오다가 아그라 시내 주변에 다다렀을 때 해도 이제 막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릭샤를 타고 가다가 붉은 빛을 보고 있는데 그 붉은 빛깔 앞에 타지마할의 실루엣이 겹쳐보였다. 사진 속에서만 보던 곳을 내가 드디어 보는구나. 첫 만남부터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만나다니 가슴이 쿵쾅거렸다.

타지마할,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할까?



건축물의 조경에 있어서 물의 역할은 대단하다. 물은 그냥 물이라서 대단한게 아니다. 우리는 건축물을 물 속에서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정말 기가 막히게 깔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지마할 앞에 서있는 아저씨. 혼자 오신걸까? 아니면 누군가를 기다리고 계신걸까.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의 황제였던 샤 자한의 세번 째 아내의 무덤이다. 그녀를 위한 무덤을 지은 샤 자한은 이 건물도 건축적으로 완벽하게 대칭으로 짓게 되었다. 동서남북으로 완벽하게 대칭인 이 건물은 비대칭인 곳이 있는데 바로 그의 무덤이다. 아내의 무덤 위치 옆에 또 다른 무덤이 있는데 그것이 샤 자한의 무덤이다. 근데 정문의 디테일을 봤는데 문양까지는 대칭인데 양 옆에 써져있는 글씨인지.. 이건 대칭이 아니더라. 그걸 찾고 나서 사진으로 남겨놨었다.



인터넷에 사람들의 환상과 실제 모습으로 비교 하는 사진이 봤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타지마할의 모습과는 달리 실제로는 사람이 바글바글 하다는 내용이었는데 실제로 그렇다. 타지마할은 오픈 시간에 맞춰서 가는게 아니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내 생각에 나는 아그라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낼 필요를 못 느꼈다. 타지마할만 보면 된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무래도 타지마할에서만 많은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고 생각한 나는 점심을 먹으면서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아그라 포트에 가게 되었다.



아그라 포트에서 본 타지마할의 모습. 아그라에는 야무나 강이 있는데 그 강 주변으로 아그라 포트와 타지마할이 위치하고 있다. 야무나 강에서의 보트 투어도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곤 한다.



아저씨, 거기에는 뭐가 있길래 그렇게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는거죠?



아그라 포트에서 만난 다람쥐인지 청설모인지. 아그라 포트 안에서 10루피를 받고 씨앗(?)을 파는 사람들이 있는데 - 물론 그냥 일반인이 와서 파는거다. - 손바닥에 씨앗을 올려두고 있으면 이 녀석들이 와서 먹고 간다. 물론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멀리서 보기만 했다. 



내가 우다이푸르로 가는 기차를 탔던 곳은 아그라 칸트역이었다. 내 열차 시간은 6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고 이 때 시간이 3시 반 쯤이었나. 뉴델리에서 샀던 인도 유심이 아그라에서는 잘 먹히지 않았다. 핸드폰도 안되길래 나는 아그라 칸트 앞에 노점이 몰려있는 곳까지 구경을 갔다. 사실 이 사진은 두 갈래로 나뉘어 있는 도로를 찍었던건데 가운데 있는 아저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 아저씨, 내가 한번 찍고 또 찍으니까 그 다음에는 머리에 있는 두건도 풀러서 제대로 포즈를 취하신다.



조금 더 들어가보니 땅콩을 팔고 있는 아저씨가 있었다. 10루피, 20루피 이렇게 땅콩을 팔았었는데 나는 이 때 20루피의 땅콩을 샀었다. 처음에 앉아서 땅콩을 까먹을 때는 내가 처음에 받았던 봉지 안에 땅콩 껍데기를 까서 넣었는데 다른 인도 사람들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땅에 쓰레기를 막 버리기는걸 보다가 나도 그냥 껍데기를 바닥에 버렸던 기억이 있다.



사방 어디를 봐도 다 인도인. 거기에 있는 동양인은 정말 나 혼자였다. 나는 나무 판자 같은 곳에 앉아서 땅콩을 까면서 인도 사람들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인도인들과 대화를 나눴었다. 짧은 영어고 제대로 하지도 못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대화가 된다는 것은 여행할 때 참 소중한 일 중에 하나다. 그들이 버스를 타러 가기 전에 빠르게 사진 한장을 남겼다.



자기 형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왔던 녀석. 내가 사진 한번 찍겠냐고 물어보니까 흔쾌히 포즈까지 취해줬다. 



위에서 봤던 인도인들이 가고나서 내 옆에 앉은 다른 할아버지. 이 할아버지하고도 잠깐이나마 얘기를 나눴다. 내가 인도에 갔을 때는 우타르 프라데시 주(인도의 주 중에 하나. 아그라와 바라나시는 우타르 프라데시 주에 있다.)의 선거 기간이었다. 할아버지는 자기 검지 손가락에 검정색으로 칠해진 것을 보여주셨는데 그게 선거를 했다는 표시라고 하셨다. 



역시 인도의 기차에 연착은 기본이라고 해야 되나. 해는 저물어 가고 기차역도 어둑어둑해지는데 이 놈의 모기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가만히 있다가는 모기들에게 엄청나게 물리기 십상이니 배낭을 메고 한참을 움직였어야 했다.



내가 탔던 3A(에어컨이 딸려있는 칸으로 SL - Sleeper 클래스 보다 한 단계 높은 좌석. 가격은 3배 정도 차이가 난다.) 칸에 같이 탔던 인도인 가족. 이 가족 말고도 모녀도 함께 탔었는데 한국인인 내가 엄청 신기했는지 이것 저것 물어보고 나는 짧은 영어로 얘기해주면서 갔다. 내가 그 들의 이름을 듣고 한국어로 써주니까 엄청 좋아하면서 핸드폰으로 사진도 찍어갔다.



그렇게 도착한 우다이푸르. 우다이푸르는 인도인들에게 신혼 여행지로 많이 찾는 장소 중 하나이다. 인도인들의 휴양지라고 할까. 그래서인지 정말 인도 같지 않은 깨끗한 모습을 보여줬다.



아마 이 사진은 드림헤븐 루프탑에서 찍은 듯 하다. 우다이푸르에 가면 드림헤븐에 다시 가보고 싶다. 정말 맛있는 버터치킨을 먹을 수 있었다. 인도 음식은 대부분 입에 안 맞았는데 버터치킨은 최고의 맛이었다. 두 번 먹었을 정도로..



내 카메라에 찍힌 내 사진 중에서 제일 잘 나온 사진. 어쩜 저렇게 웃었는지. 우다이푸르에서 만난 한국인 형님이 찍어주셨던 사진이다. 손에 들고 있는건 킹피셔. 인도에서 참 많이 마셨는데 한국 와서 생각이 많이 났다. 그렇게 맛있는 맥주는 아니지만 여행지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다 보면 거기서 먹었던 음식이나 술도 생각난달까. 결국 영등포에 있는 인도 식당 에베레스트에 가서 킹피셔 한잔을 먹었다.


이 글로 필름사진으로 보는 인도여행은 이렇게 마무리 하려고 한다. 사실 인도에서 필름을 이렇게나 쓸 거라는 생각도 못했다. 한국에서 필름을 4통인가 5통인가를 사갔는데 턱 없이 부족할 것 같아서 바라나시에서 더 샀으니..

아마 다음에 인도를 가게 된다면 그 때도 필름카메라를 들고 가려고 한다. 언제 내가 이곳에 다시 갈지는 모르지만 그 때를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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